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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K 3: 해방

by xhill

쇼핑몰 호수에서의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구급대원과 경찰들이 떠날 때까지 여인을 구하려 한 남자는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여인이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 구급차가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바람이 천천히 불어와서 나무들을 흔들리게 했다. 바람이 그를 간지럽히면서 젖은 옷과 맞닿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굳어 있었으며 변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쇼핑몰 안쪽을 바라보았다. 인공 호수에는 물이 다 빠져 있었으며 주위에는 접근 금지 표지판과 함께 노란색 테이프가 둘러 있었다. 앞으로 저 근처에는 갈 수 없을 것이며 갈 예정도 아니었다. 쇼핑몰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실은 남자의 마음에 무거운 짐 혹은 텅 빈 구멍처럼 남아 있었다.


남자는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누르고 누구에게 연락을 걸었다. 그가 연락을 걸자마자 거의 곧바로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남자는 차분하게 하지만 어딘가 무거운 어조로 먼저 말을 꺼냈다.


"여자는 죽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추출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고, 곧이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과격한 말들과 소리를 견뎌야만 했다. 짜증과 화를 짓누르면서 남자는 전화를 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쇼핑몰의 인공 호수에 빠져 죽은 여인의 정체는 특수 요원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과 행선지를 포함한 정보가 유출되어, 그녀가 오늘 중요한 임무를 위해 쇼핑몰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적들이 알게 된 것이었다. 적들은 그녀를 쇼핑몰에서 암살함과 동시에, 그녀가 죽어가거나 죽은 직후에 장치를 통해 그녀의 머릿속, 그녀의 기억을 스캔해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려 했던 것이다. 남자는 여인을 2층에서 몰래 밀친 다음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는 척하면서 그녀의 목에 작은 가느다란 주사기 모양의 장치를 찔러 넣은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죽은 직후의 시체에도 사용할 수 있는 장치였기에 여인이 사망한 직후였다는 사실은 문제가 아니었다.


죽은 여인의 머릿속에서는 중요한 정보나 기억들이 깨끗하게 지워진 듯했다. 남자는 자신의 진정한 목적과 행동을 모르는 구급대원 몰래 여인의 목에 주사기를 꽂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이런 일을 벌일 것을 누군가 알고 미리 기억을 지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자는 전화를 끊고서 어두운 표정을 유지하면서 떠나갔다. 그날 있었던 모든 일들, 자신이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실패의 이유를 계속해서 생각하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쇼핑몰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의 등 뒤로, 어두워진 한밤중의 쇼핑몰 내부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강렬하고 뚜렷하게 빛을 뿜어냈다. 하지만 남자는 쇼핑몰을 등 뒤로 두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설마 시선을 그쪽으로 했다 하더라도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 빛은 쇼핑몰 내 전등이나 가로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불빛이 아니었다. 야광 벌레나 반딧불이가 사는 장소도 아니었다. 쇼핑몰 내부의 빛은 몇 번 더 반짝이면서 어둠 속을 밝혔다. 이후 그것은 점점 희미해지면서 쇼핑몰 안쪽 어딘가로 사라져 갔다. 그 빛의 주변에는 더 작지만 아름다운 여러 개의 빛들이 길을 밝히고 환영하듯 반짝이고 있었다.


쇼핑몰 앞쪽의 허물어져 가는 벽에는 쇼핑몰의 이름을 담은 거대한 간판이 있었지만 그 아래는 수많은 낙서와 스티커, 그래피티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것들 사이에, 그것들 뒤편에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먼저 벽에 새겨진 글자가 아직 작지만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몸에서 막 해방된 영혼과 기억들이 가는 곳 - 저 너머로'


다시 고요함을 되찾은 쇼핑몰에는 낮에는 찾아볼 수 없는 신비롭고 특별한 분위기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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