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하고 우울한 세상, 하지만 그 사이에도 빛나는 순간들은 있다
*스포일러 포함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013년 게임이 발매되고 2020년 호불호와 논쟁을 몰고 온 속편과 2023년 첫 드라마 실사화까지, 정말 많은 찬사 뿐 아니라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시리즈이다. 필자는 원래 게임을 그다지 즐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 게임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명성은 오랜 기간동안 익히 들어 왔으며, 이번 HBO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드라마가 비디오 게임을 실사화한 작품 중에서는 흔치 않게 대호평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관심이 생겨 시리즈를 찾아보게 되었다.
듣자하니 달라진 부분도 몇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 각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재밌게 플레이했던 게임이 영상물로 옮겨지는 모습을 보고, 게임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분명 있을 터, 하지만 나는 게임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경험을 한 것이다.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면 원작과 얼마나 친숙한지와 상관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본 드라마를 통해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모든 에피소드들은 적어도 50분, 길면 1시간 20분 정도로, 영화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분량을 가지고 있다. 긴 런닝타임 때문에 부담감을 느낄 시청자들도 없지는 않을 것 같지만, 적어도 이 시간들이 낭비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30분에 가까운 시간을 이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할애한다. 보통의 영화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볼 수 있다. 2시간 짜리 영화라면 보통 짧은 오프닝 씬에서, 아무리 길더라도 10분 안팎의 시간밖에 쏟을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하나의 에피소드가 1시간에, 8~9화의 분량에 이르는 드라마는 그러한 제약이 없다.
본 시리즈의 서막을 여는, 무시무시한 사태의 발생을 예고하는 첫 장면은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서 오랫동안 남는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겪은 이후의 우리이기에, 바이러스 등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드라마는 수많은 작품들에서 사용된 좀비 바이러스 설정과는 조금 다르다. 팬데믹 뿐 아니라 2020년대 인류가 겪고 있는 또 다른 중대한 지구적 문제인 온난화를 가져온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도록 진화한 균류, 필자는 과학 비전공자 문과이기 때문에 이 설정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정확한지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좀비/바이러스 장르의 작품들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일어날 수 있을 것처럼 다가온다. 짧은 조사를 해 보니 원작 게임은 2013년에 사태가 발생하고 2033년에 본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판은 2003년에 사태가 발생해 2023년, 바로 현재 지금 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설정 변경 덕분에 더욱 무섭게 와닿는 것 같다.
2003년 사태가 시작되던 날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자 우리가 따라가는 인물은 주인공 조엘이 아니라 그의 딸 사라이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에서부터 학교에 가고, 아버지 조엘을 위한 선물로 시계를 고치고, 이웃집에 방문을 하고.... 이 모든 활동을 하면서도 중간중간에 닥칠 재앙에 대한 암시가 이곳저곳 모습을 드러낸다. 밤이 되자 밀러 가족은 결국 차량을 타고 도망을 가게 되고, 주인공인 줄만 알았던 사라는 결국 군인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된다. 시청자들이 따라가면서 주인공인 줄만 알았던 인물이라고 해서, 보통 장르물, 재난물에서 잘 죽지 않는 어린 아이라고 해서 결코 안전하지 않다.
이 사실은 이후 에피소드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성격이나 개인사 뒷이야기 등 인간화가 많이 되었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고 인물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그것도 어느 경우는 감동적이지만 반대로 비극적이고 우울한 결말을 맞이할 때도 있다. 테스, 빌과 프랭크, 헨리와 샘.... 주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보았는데 동감하지 않는다. 특히 빌과 프랭크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드라마를 보면서 간만에 눈물을 흘리게 해 주었다.
<만달로리안> 때 페드로 파스칼에 처음 빠졌는데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이후 가장 멋있는 배우 중 한 명이 된 것 같다. <점프 스트리트> 시리즈와 <데브스>에서 인상깊었던 닉 오퍼맨 역시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라인의 일부 답게 기억에 남는 연기를 펼쳤다. 예전부터 알던 배우들은 저 둘뿐이었는데 엘리 역의 벨라 램지, 헨리 역의 라마 존슨 등 인상깊은 배우들이 많이 보였다.
이와 같이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계속해서 여정을 이어나가는, 우리의 주인공들은 조엘과 엘리. 두 주인공들이 처음 조우하고, 아직 서로를 차갑고 계산적으로 대하는 1,2화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고, 조엘은 엘리가 건낸 농담에 웃기까지 한다. 항상 무뚝뚝한 얼굴과 목소리의 조엘이 엘리와 함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보는 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띈다. 개인적으로 초반 1,2화를 볼 때는 몰입은 되었지만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그 이후 에피소드들에서, 마치 조엘과 엘리가 서로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가까워지는 것처럼, 나도 캐릭터들과, 이 드라마와 더욱 가까워지고 몰입이 되는 경험을 한 것 같다. 3화에서 감정적인 펀치를 날린 다음, 4화와 5화부터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 시작한 느낌이다. 6화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시리즈 절반은 잘 만들었으니, 나머지 절반도 하락하지 않고 잘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When you're lost in the darkness, look for the light."
5화가 끝난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느 때보다 우울하고 적막한 상황이지만, 계속 빛나는 따뜻한 순간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앞으로 남은 에피소드들에서 어떻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