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속의 편지

by xhill

알 수 없는 머나먼 세계의 바다.


아이를 떠나보낸 어머니의 눈시울처럼 하늘은 붉은빛을 띠었다.

붉은 눈물에 적셔진 모래는 그 강렬한 감정을 흡수하기까지라도 한 듯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맨발로 해변을 걸어가며 모래와 바닷물을 느끼는 소년의 다리를 타고 자연의 온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 온기에는 대자연이라는 어머니가 자신의 피조물을 대하는 따뜻함 뿐 아니라 다른 데에서 오는, 슬픔이나 분노 비슷한 것에서 유래한 듯한 다른 뜨거움도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다.

소년은 이것이 모두 다 하늘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른 초저녁의 바다 하늘을 바라보는 데에서 온 느낌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닷가를 산책하던 것은 늘 하던 일이었다. 오늘은 여름이 서서히 저물어 가며 가을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러내는 시기였기에 평소보다 붉은빛이 더욱 강하게 드러났으며 화려하면서 잔혹한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일 뿐이지, 평소와 크게 어긋나는 부분은 없었다.

소년은 이렇게 산책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까끌한 모래와 바닷물이 만나 만들어진 해변의 진흙을 맨발로 밟으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신을 닦달하는 부모님과 학교에서의 성적, 앞으로 마을을 벗어나 펼칠 자신의 미래 같은 고민거리들이 햇빛 아래 눈처럼 서서히 녹아 사라지곤 했다. 어떤 때에는 머릿속에서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서 오직 자신을 둘러싼 자연 풍경과 바닷바람, 뜨거운 공기에만 집중한 채 명상을 하듯이 걸을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머릿속이 상쾌해지면서 마음속에는 기분 좋은 안정감이 감돌게 되었다. 오늘의 산책은 후자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소년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을이 되면 초저녁의 하늘이 노란색과 황금빛으로, 그리고 겨울이 찾아오면 차가우면서도 우아한 짙은 파란색으로 변할 것을 상상했다. 한겨울에, 그것도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시점에 바닷가에 산책을 가려면 추위가 어마어마했다. 추위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두꺼운 옷을 단단히 껴입어야 했지만 그것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겨울밤의 해변은 아름다웠다. 마치 거대한 푸른 사파이어 보석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자신과 세계를 둘러싼 푸른 장막을 통해서 세상을 둘러보는 것과 같았다. 소년은 겨울 바다의 풍경을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소년의 내면에 남긴 인상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해 소년이 늦여름인 지금부터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겨울밤이 점점 깊어지면서 구름이 걷히면 하늘에 별과 은하수가 떠오르고, 푸른빛은 옅은 하늘빛으로 점점 바뀌어 가면서 온 세상이 다이아몬드빛으로 물든 것처럼,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때는 아직 더운 여름이었고, 소년은 뜨거운 공기와 붉은 하늘 아래에서 따뜻한 모래와 바닷물을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자 마음속이 겨울의 그것처럼 시원하고 차가워지는 듯했다. 몸의 겉과 안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이렇게 다른 것도 신기하면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소년은 기분 좋게 산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얼마 뒤면 태양과 그가 흘린 눈물의 흔적이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전등을 켜지 않으면 어둑어둑해 앞을 보지 못할 정도의 밤에 가까워질 것이다. 소년은 이제 곧 있으면 방향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발치에 무언가가 걸려 그가 넘어질 뻔한 것은 그때였다.

소년은 앞으로 완전히 고꾸라질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 자리를 되찾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그의 가슴이 뛰고 있었으며, 그의 발걸음으로 파인 모래가 이곳저곳으로 튀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넘어질 정도로 큰 돌이었다면 분명 눈에 띄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소년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그가 자신의 발에 걸렸던 물체로 시선을 가져갔을 때 곧바로 해결되었다.

그의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하게 만든 것은 바위나 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었으며, 인간들의 손길과 도구들을 거쳐 만들어진 대상이었다.

그것은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을 뿐 아니라, 투명해서 속이 훤히 보였기에 그가 보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물체는 바로 유리 병이었다.


유리병을 확인하자마자 소년의 마음에 짜증이 몰려왔다. 고작 이것 때문에, 누군가가 버려놓은 유리병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다니.

'혼자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 소년은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허리를 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주변에는 다른 사람은커녕 바다다람쥐나 갈매기마저 보이지 않았다. 생명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태초 지구의 바닷가에 홀로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누가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 같은 꼴을 당해서는 안 되지. 게다가 동물들이 이것 때문에 다치면 어떡해?'

소년은 자신의 몸에 튄 모래를 털어낸 다음 유리병을 바닥에서 뽑아냈다. 유리병이 꽂혀 있던 위치와 모래에 파묻혀 있던 정도를 보아 누군가가 버린 것이 아니라 바다 어딘가에서 떠밀려 온 것 같았다.


모래에서 유리병을 뽑아낸 소년은 병에 묻은 모래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유리병에는 갈색 코르그 마개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는 흠칫 멈추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울 정도로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종이가 담겨 있었다.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하고 먼지 비슷한 것들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종이였지만, 돌돌 말려 있었기에 그것의 온전한 상태나 그것의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종이 너머로 희미하게 다양한 글씨와 형상들이 보였다. 소년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머릿속을 가른 번개는 소년의 '호기심' 단추 위로 내리쳤다.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코르그 마개로 가져갔다. 마개는 어렵지 않게 뻥 소리를 내며 뽑혔다. 이렇게 쉽게 뽑히는데 물에서 떠있거나 모래에서 뒹구는 동안 어떻게 빠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소년은 모래와 물기가 묻은 자신의 손을 옷에 대충 비벼 닦았다. 그리고는 병을 기울여서 안의 종이가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나오도록 했다. 돌돌 말린 종이 뭉치는 병 속에서 나와 이제 소년의 손 위에 놓여 있었다.

소년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려 있던 종이를 폈다.

종이는 두 장이었다. 큰 것과 작은 것 각각 한 장씩. 큰 종이에는 그림이, 작은 종이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작은 종이의 오른쪽 아래에는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소년은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종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먼저 그림을 보고는 작은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소년은 순식간에 글을 읽었다.

소년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소년은 떨리는 손을 뻗어 작은 종이의 가장자리에 묻어 있는 가루를 만졌다. 그가 종이를 문대자 손끝에 가루가 묻어 나왔다. 아직 하늘에 남아 있는 붉은 노을빛 아래에서 소년의 손끝은 푸른색으로 반짝였다.

마치 오랫동안 잠수를 하다가 수면 바깥으로 나온 듯, 소년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


그리고서 소년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순식간에 종이를 다시 말아 유리병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실제로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하늘에서 빛이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어두워져서 길을 잃기 전에 최대한 빨리 집으로 가야 했다. 최대한 빨리 마을의 다른 어른들에게 이 편지를 전달해야만 했다.

소년은 모래에 떨어트린 코르그 마개를 다시 유리병에 박아 넣은 다음, 병을 들고 자신이 걸어온 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모래와 물이 바닥에서 사방으로 튀었다. 소년의 옷 역시 조금씩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손에 달린 유리병이었다. 소년의 얼굴에는 흥분감에서 피어오른 미소가 나타났다.


점점 사라져가는 노을빛과 반대 방향으로, 세상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전에 소년은 계속해서 집을 향해 뛰어갔다.




이 편지를 읽게 되는 이에게, 그것이 어디에 사는 누가 되었든

만약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면, 이 편지를 읽는 당신은 바다에서 떠밀려온 유리병에서 종이를 꺼내 읽었을 것이다. 이 편지 외에 지도 한 장이 함께 담겨 있었겠지.

종이와 잉크가 부족하니 본론만 말하겠다.

지도는 보물 지도다. X자로 표시된 곳은 여러 바위들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이 공간의 중앙에는 거대한 심해 동굴과, 상상할 수 없을 양의 보물, 그리고 금과 보석이 저장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금과 광물 뿐 아니라 수 세기 동안 해적들이 이곳을 비밀 장소로 사용해온 것 같다.

문제는 나와 선원들이 타고 온 배가 폭풍에 휩쓸려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나와 몇몇 선원만이 살아남았다. 물과 식량은 얼마 남지 않았고, 시간이 얼마 없다.
이 편지는 보물의 위치를 알리는 동시에 구조 요청의 수단이다. 이곳으로 와 나와 선원들을 구조해 준다면, 이곳에 있는 보석과 보물들을 나누어 가지자.

다만, 폭풍의 세기가 강력한 데다가 보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게 좋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부디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그리고 서둘러 주기를.

지평선 너머, 안개와 파도와 폭풍을 넘어서...

*추신, 믿지 않을까 봐 다이아몬드를 부순 가루를 편지에 묻혀 보낸다. 이곳의 보석 양이 어마어마하기에 다이아몬드 조금을 부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편지 가장자리에 묻은 가루를 떼어낸 나이 든 남자는 편지의 내용을 읽었을 때의 소년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다이아몬드가 맞아."


소년이 편지를 가져온 밤 마을은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아 이웃 마을들, 인근에 있는 성주와 영주들까지 합세해 거대한 배 한 척이 준비되었다.

뱃경험이 많은 선원들과 힘이 센 남자들, 보물을 직접 가져오고자 여정에 참석하기로 한 부자들과 귀족들까지, 백여 명은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원정대가 꾸려졌다.


그리하여 소년이 편지를 발견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 '흩날리는 다이아몬드'라고 새로 이름 붙여진 퇴역 항해선은 다시 한번 물길에 오르게 되었다.

소년은 여정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흩날리는 다이아몬드'가 여정을 시작하는 날 마을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정의 출발길을 배웅하는 자리에 있었다. 자신이 늘 산책을 하던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소년이 발견한 편지와 지도뿐 아니라 그것이 담겨 있던 유리병까지 모두 선원들이 여정에 가져가게 되었다. 편지를 쓴 주인을 마주하게 되면 다시 돌려주고 본인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소년은 여정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유리병이 자신과 달리 여정에 동참하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붉은 해안가를 산책하면서 자신이 우연하게 발견한, 마치 동화 속 한 장면과도 같은 상황에서 맞닥뜨린 보물과도 같은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유리병과 편지 자체는 보물이 아니었다. 그것이 이끄는 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물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짧은 시간 동안 유리병과 편지지에 애착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

소년은 황금 빛줄기가 내리쬐며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평선 너머로 배가 사라질 때까지, 언젠가 유리병과 편지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원들이 배를 타고 그 이름에 걸맞게 보물과 보석들을 흩날리며 다시 지평선 너머에서 나타나는 날이 찾아온다면, 소년은 다른 보물들보다도 자신이 발견했던 유리병과 편지를 가져와 자신의 방에 보관해 두고 싶었다. 모험과 탐험, 발견에 대한 소설과 위인전들이 꽂힌 책장 맨 위에 전시해 두는 것이다. 책장에 있는 다른 그 어떤 물건들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소장품이 될 것이다.

배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사람들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새 바닷가에는 소년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다시 익숙한 시간이 찾아오자, 소년은 신발을 벗고 젖은 모래를 느끼면서 산책을 시작했다. 해변가에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발바닥에도 시원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 안개와 파도와 폭풍을 넘은 어딘가.


푸른 하늘에는 구름 여럿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지만 바람 하나 불지 않고 잠잠했다. 거대한 바위 여럿이 신전처럼 솟아오른 이곳에는 폭풍우와 천둥번개가 내리쬐기 일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 바다의 그 어느 부분보다도 고요했을지도 모른다. 물의 찰랑거림은 어머니의 속삭임이 되고, 아이가 새근새근 낮잠을 잘 수 있도록 햇빛은 내리쬐고 구름은 하늘의 베개가 된다.


기둥 같은 거대한 바위 주변에는 작은 암초 같은 바위들 수십 개가 이리저리 펼쳐져 있다.

멀리서 보면 고래의 울퉁불퉁한 등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 있는 수많은 바위들 중 넓고 커다란 책상과도 같은 바위 하나가 있었다. 거기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햇빛을 받아 메마른 바위에 종이를 대고, 잉크를 부어 기다란 새의 깃털에 묻혔다.

글을 다 쓰자 잉크와 종이 옆에 놓인 주머니에서 가루를 꺼내들었다.

가루는 옅은 푸른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종이의 가장자리에 침을 뱉었다. 마치 소총이나 활을 쏘는 것처럼 튀지 않고, 정확하게 종이의 오른쪽 아래만이 끈적하게 젖었다. 그 위에 가루를 떨어트린 다음 부드럽게 쓰다듬어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미리 준비해 둔 더 큰 종이와 함께 두 종이를 유리병 안에 집어넣고서 코르그 마개를 닫았다.


그는 유리병을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유리병은 저 멀리 날아가 바닷물에 풍덩 빠졌다. 이윽고 유리병은 물길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편지를 쓴 바다의 인물은 유리병이 흘러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는 아름다운 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은 조용히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흩날렸으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하얀 몸은 태양 아래에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유일하게 조개껍데기로 가린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조각 같은 몸은 그녀의 모습을 보는 어떤 남자조차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여인의 등 뒤로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달린 기다란 꼬리가 양옆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편지를 다 써서 흘려보냈구나. 자매여."


인어 여인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또 다른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날개의 끝과 손, 그리고 발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 있었다.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오라는 말을 집어넣었어. 그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식량을 충분히 비축해 두지."


인어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섬뜩하고 잔혹함이 보이는 미소였다.


"그동안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래를 연습하고 있어야지." 날개 달린 여인이 말했다.


곧이어 뒤에서 거미 다리를 가진 여인, 그리고 뱀의 꼬리를 지닌 여인이 하나둘씩 나타나 그들과 합세했다. 그들의 입가에는 붉은 액체가 묻어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바다 저 너머를, 편지를 넣은 유리병이 흘러간 곳을 바라보았다. 미끼를 던졌으니 물고기가 몰려올 차례였다.


여인들이 나온 구멍, 기둥 바위들 사이에 있는 거대한 동굴 속...


그곳에는 수많은 보석들과 금덩이들이 있었지만, 그 너머에는 난파되어 너덜너덜해진 배들이 끝도 없이 모여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하얀 뼈다귀와 해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동굴의 한가운데, 바깥의 햇빛과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에는 살점이 이리저리 파먹히고 처참히 훼손된 선원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눈알이 파먹히고, 팔다리가 거칠게 뜯어졌으며, 내장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이것은 단지 에피타이저였을 뿐이다.


겨울잠을 앞둔 세이렌의 마지막 식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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