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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영 Aug 01. 2022

면칠수행

색칠가 [ 선영 ]의 브런치 글쓰기 하는 첫날

수행이라는 단어에 고착된 나의 감정은... 


고되다, 화난다, 참는다, 치유,  지금 이상의 무언가를 원한다, 애쓴다, 고생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 등등 잔잔하고 잡다하며 지속적인 생각 고통거리들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물리적인 행동의 반복이라고 생각해왔다. 

얼마 전까지는...

칠쟁이 선율의 찐손 [사진:선율]

 '아니, 어쩌다가 페인트칠을 하게 되셨어요...??'

 '어머, 이런 일을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원래 모하던 분이세요?'

 '페인트칠 힘들지 않아요?'

페인트칠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들이다.


 '누나, 페인트칠 재밌어요~?'

2011년 이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들어본 질문이다.  불과 몇 달 전...

나름 의미 있는 질문이었는데 이상하게 누가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질문만 기억이 날뿐...

'페인트칠 재밌니?' 나에게 계속 묻는다.

그때 그 질문에 나는, 

'면벽수행하는 거죠 ㅎㅎ 페인트칠하면서 하니 

 면칠수행이겠네요~'

그러나 이때, 이제껏 생각 해왔던 수행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나는 곧 깨달았다.  머리와 심장에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시며 몸도 가벼워지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기분이었고 강도는 약해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몽글몽글 지속되고 있다. 


처음 페인트칠을 배울 때는 시간이 너무 잘 가서 좋았다.  

하다만 결혼, 나름 화려했던 사업과 전직, 돈, 가족, 인간관계 등 모하나 멀쩡한 게 없었을 때였다. 그것도 물론 내가 지어낸 '생각고통'들이었지만 하루에 짧게는 7시간, 길게는 20시간 정도를 현장에 몰두(도망일지도)하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도, 조카들이 커가는 것도, 강아지가 개가 되어 무지개다리 건너가는 슬픔조차도 순식간에 지나갈 만큼 시간이 너무 잘 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힘듦들, 머릿속에서 계속 소설 쓰는 고통과 불안의 스토리텔링을 잠시라도 멈출 수 있게 해 준 나의 구생직업 페인트칠... 내 맘대로 되는 게 단 한 개도 없다고 느낄 때 수천수만 가지 색만큼은 내 맘대로 칠해볼 수 있다는 것(돈도 벌면서^^)은 정말 매력적이다

플라스터 도료(미장재) 컬러 샘플[사진:선율]

얼마 전 자신의 오래된 우울감의 원인이 '불안감'인 거 같다는 지인과 차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평소엔 사람들과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앉아서 오래 이야기하는 법이 없는 내가 그녀의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약 한 시간 정도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아이가 있어도 아이 얘기보다는 그녀 자신의 내면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고 일상적인 삶의 주변 것들보다는 그녀 자신, 자기, 자아에 대해 생각하고 고뇌하고 성찰하며.. 체념과 포기, 합리화, 도전, 달램 등 머릿속 여행을 쉬지 않고 할 것 같은 그녀의 요즘 이슈는 '불안감' 인 듯하다.

결국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불안' 은 인간 공통의 큰 이슈이다.  불안이  '생각의 상태'일 때는 사실 그다지 위험한 것 같지 않다.  단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어떤 것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 생각과 또 다른 불안의 퍼즐들이 우연이 만나게 되면 감정이라는 화학적 물질이 생겨나는 듯하다.  


내가 즐겨보는 1분 과학이라는 채널의 유튜버가 한 말을 빌리자면-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물이 생기듯이 생각들이 만나면 감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고 한다.  우리는 화나는 감정, 슬픈 감정, 기쁜 감정, 사랑의 감정, 묘한 감정 등등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는 인간이다.  감정은 단지 생각 그 자체라기보다는 여러 생각들의 조합으로 만나 탄생하게 된 어떤 결과물이 아닐까?  '불안감'은 원재료인 생각들의 조합으로 제조된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그녀라면... 그녀의 불안감은 어떤 생각들이 합성되어 생겨났을까 궁금해하며 집에 와서 조금 더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또 며칠 동안... 지금도 생각 중이다. 

음... 어떤 비교가 있었을 것 같다.  그 비교로 어떤 기준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어떤 목표가 만들어졌으며 잠깐은 기대와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고 섬세하고 소심한 그녀는 그 원인을 외부(타인)로 돌리기보다는 비교적 티 안 나고 만만한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의지박약함과 미루고 미루는 게으름 등의 이유로 자신을 몰아붙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며 스스로 다그쳤을 수 있다.  감정표현을 철저히 숨기며 셀프로 삭히면서,  남몰래 자기 자신을 벽에 수없이 들이받으면서도 외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주위에서 그것들을 해소시킬 희망,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아주 깊은 우울감에 빠졌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 


가슴이 살살 아파온다.  먹먹하다. 나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생각은 나의 상상에 불과하다 (feat.그건 니 생각이고...)

내가 그녀가 되지 않는 한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나와 그녀... 나와 너......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되었을까... 구별, 분별, 그리고 비교... 그녀는 그러그러하니 나는 이러이러해야지, 그렇게 되려면(또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겠지라는 목표, 그 목표가 달성되면 행복해지겠지라는 기대와 희망... 그러나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 이유가 있을 텐데... 찾다 보니, 결국 내 탓...?


눈을 감으면 그녀가 없다.
눈을 뜨면 그녀가 있다.
눈을 감으면 나는 없다.
눈을 뜨면 그녀가 나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를 떠올려본다.
그렇다면 그녀는 있는 걸까 그냥 그녀를 떠올리는 내가 있는 걸까
감았다, 떴다 해본다.
내가되었다, 그녀가되었다 해본다.

페인트 칠하면서 이런 생각하면 사다리에서 떨어진다ㅠㅠ

[사진:선율] 벽면에 스웨이드 페인팅 중-valrenna



붓을 쥐고 있던 손가락은 스스로 움직이다가도 어느새 힘이 빠져나가 붓을 놓치고, 한. 발. 한. 발. 움직이던 두 다리들은 나무늘보처럼 속도가 느려진다.

사다리를 꼭 쥐고 있던 다른 한 손은 엄한 허공을 쥘 수도, 발은 허공을 디딜 수도 있다.


높은 사다리에 올라갈 때는 아랫배와 등근육을 각성시키며 작은 발이 헛디디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일이 없도록 정신통일을 한다. 하나 둘 셋... 페인트가 가득 담긴 통과 붓, 롤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두손 두발 허리 배 눈... 모든 육체의 각 기관들을 살펴보고 알아차리며 올라가야 한다.

페인트 칠하는 선율 [사진: 오라클라운지]



피지컬이 우수한 사람이라면 단숨에 날아다니겠지만 보통 중년의 여자사람(사실 왕년에 춤쫌춘)에게는 높은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마치 밧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밧줄타기의 묘미는 '불안감'이다.  여기에서 오는 불안감은 앞서 얘기한 것과는 또 다른 생각들의 합성인 듯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면 생기게 될 일들... 다치거나 죽는다.  다쳐서 아파지거나 죽어서 끝나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내 육체를 덜덜덜 떨게 하는 듯하다.





'자기야, 자기는 다시 태어나면 무슨 일 하고 싶어?'

'뭘 다시 태어나.. 죽으면 끝이야..'

'아니 만약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런 건 없어 그냥 끝이야... 잠자는 것처럼 아무 기억이 없고 그냥 끝이지 모'

'자기 죽어봤어? 어떻게 알아? 사후세계가 있을지 없을지?'

'......'

'걍 한번 재미로 얘기해보자~ㅋ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다시 태어나도 페인트칠 할거야?'

'그냥 페인트를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면 좋겠어... 얼마나 재밌냐 ㅋㅋㅋ, 이게 딱이야 ㅋㅋ'


지금의 우리는 페인트짝꿍이다. 다시 태어나도 페인트를 최대한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사람과 살고 있다.

페인트칠로 만나서 같이 일했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산다.  지금은 각자 영역에서 페인팅일을 하고 있지만 자는 시간 빼고(꿈에서도?) 페인트와 관련된 이야기로 늘상 함께한다.  창고와 공방도 모자라 살고 있는 집 안에 방 하나도 페인트로 가득 차 있다.  

높은곳에서 떨어져 생사를 넘나드는 대수술을 하고도 불안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과 살지만 나의, 그녀의 불안감은 없어질 수 없는 어떤 물질이 되어버린것 같다


페인팅현장에서 이 '불안감'을 이겨내는 나의 처방전은 '윤회'였다.  지금 이 삶이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닐거야 라고 그냥 믿어버리면 되는 간단한 처방전이다.  그래야 지금의 내가 설명이 되고, 그때 그 일들이 설명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몸은 죽어도 지금 이렇게 페인트칠하고 생각하고 글 쓰고 행복해하는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처방했다.  그래야만 우울감과 불안감에서 멀어질 수 있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 건가...?'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영원히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좋은 건가...? 왜 죽는 게 두려운 거지...? 왜 죽기 싫어서 불안감을 창조하는 거지...?

짝꿍의 말대로 죽으면 끝!... 이게 왜 싫고 밀어내는 거지...?

[사진:선율] 전기공사가 안된 현장에서는 어두움을 밝혀야 한다.(조명은 항상 챙겨다니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상상이 많았다. 천국에도 가고 싶었고 천사도 되고 싶었다. 어린 나이지만 현실이 무섭고 고통스러웠나 보다.

항상 가위에 눌리고 꿈을 꾸고 무섭고...  주일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더 심해진 생각들.

하느님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배우며 성경에서 튀어나온 주인공 신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을 좀 더 확실히 분별하였고 죽음을 넘어서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계획과 그렇게 되면 영원히 죽지 않는 구원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자라났다.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신을 찾아야 했고 신에게 물어봐야 했다.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매 순간 신의 뜻을 알고 싶었다.  신과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신은 나에게 음성을 들려주지도 모습을 나타내지도 편지를 써주지도 않았다.  점점 나의 기대와 희망은 사라져 갔고 나는 결코 신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함께 나는 부족해, 열등해 라며 나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날개 달린 천사들을 시기 질투하지만 열정에 비해 창세기도 제대로 다 읽지 못하는 의지박약 덩어리였다.  또 그런 나를 책망하기를 반복한다. 


노력이 부족해... 넌 천사가 될 수 없어...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야...


매해 구약성경 신약성경 완독 하기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한 번도 이룬 적이 없다.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한 나를 항상 탓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거리낌있는 일을 하면 죄를 지은거 같아 벌을 받을까 무서웠고,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거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신에게 상을 받았다(내 기도를 들으셨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30대를 훌쩍 지나는 동안 나는  늘상 이러한 생각들을 반복하며 항상 신을 찾아다녔다.  


참 고달팠다.


내가 추는 춤에, 내가 듣는 음악에, 내가 쓰는 글에, 내가 먹는 밥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신이고 나이구나 하는 어떤 깨달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한 영성학교의 워크숍(또 신을 찾기위해)에 참가한 이후 멍한 상태에서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책을 보게 된 시점인 거 같다.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는 책을 다시 펼쳐보지 않는 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늘한 바람이 나의 육체와 뇌를 통과하는 그때 그 느낌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서글픈 맘으로 차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무료함을 달래려 펼쳐본 지인의 책...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지금, 지금만이 있으면서도 없다 라는 그 논리?!- 나에게 자유가 허락된 큰 시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죽음'을 포함해 실시간 일어나는 불안감들을 애써 반사시켜 표출하는 것보다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받아들여 꽉 껴안고 그 감정을 분해해보기 시작했다.  조이고 있던 수십 개의 나사를 드릴로 하나하나 풀어보고 다리와 상판을 해체해보고 본드로 붙였던 연결부위를 망치로 떼어낸 후 바닥에 주욱 나열한 해체된 나무가구처럼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가구도 아니다. 그냥 조각이다.  쓸모도 쓰임도 이유도 없는 그냥 나무 조각이다.  하나의 작은 씨앗에서 자라난 큰 나무를 베어 판재로 가공한 뒤 각자가 필요한 대로 디자인하고 편집, 조립하여 만들어낸... 어떤 것...이었다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사진,페인팅:선율] 고재가구 해체한 각재페인팅 

아주 작디작은 어떤 생각의 씨앗이 커다란 나무가 되고 나의 온갖 망상과 상상으로 식탁도 만들고 침대도 만들고... 불안감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이런 감정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윤회'라는 처방전을 넘어 '해체'라는 처방전을 써 보고 있다.  매우 의미 있는 것은 '윤회'처방전은 도피성이라면 '해체'처방전은 원인의 소멸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약간의 부작용이라고 하면 '엥? 모야? 아무것도 아니네?' 하는 '허무'라는 뒷 감정이 따라올 수 있다는 점이지만 나는 이것을 '공'하다는 가상의 공간에 저장한다. 이 공간은 나에게 예술과 창조의 에너지원을 저장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통의 소멸들로 생겨날 수 있는 허무, 무기력, 상실감, 어이없음 등의 꼬리 감정들을 '공'하다 공간에 집어넣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예술적 행위들로 완전히 연소되는 기분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되고, 위대하고 트렌디한 예술이 아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에게 예술은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해체를 통해 발생된 고통의 대체물, 어떤 LPG가스 같은 것들을 없애고 연소시키는 수단이라 표현하고 싶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그 행위 자체로 참 힐링되는 활동이다.  그것이 나의 예술이다.

얼마전 끝낸 용인의 타운하우스 페인팅현장-dunnedwards paints, valpaint [시공: 오라클라운지(주)  사진 : 선율]

인테리어 현장에서 내가 하는 페인트칠은 순수한 예술활동이 아니다.

금액, 컬러, 질감, 디자인, 장소, 공사기간 등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이 나에게 예술활동 이상의 힐링과 깨달음을 주는 이유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감정들을 해체하지 않아도, 아니 그 자체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습하고 덥고 온몸이 불덩이가 되는 여름 현장에서  생겨나는 것은 부정적 감정이 아닌 다양한 감각과 시원한 쿨톤의 회색빛 안정감이다.


정수리에서부터 얼굴, 목, 가슴, 배, 허벅지, 종아리를 거쳐가는 땀의 흐름을 느낄 수 있고, 그 감촉을 느끼며 붓과 벽 사이에 도료라는 색채 물질을 바르는 촉감, 소리, 냄새, 두께, 속도감을 경험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 날씨와 빛에 따라 모두 다른 그 경험들, 움직이고 있지만 정적인 내 안의 나, 숨 쉬고 있지만 바라보고 있는 존재, 불쑥불쑥 올라오는 간헐적 만족감, 꼭 가구나 물건이 되어 쓰임새가 있게 되지 않더라고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운 나무와 돌, 풀들처럼... 원재료 그 자체인 나의 생각들이 창조적이며 아름답게 아름답게 느껴진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의 파도 속에서 이런저런 스토리텔링으로 소설을 쓰며 불안감이라는 망상의 자식을 탄생시키지만 않는다면 '생각'은 나에게 인생을 가득 차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이다. 나에게 있어서 페인트칠은, 생각을 생각으로 그냥 슥 지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그 어떤 명상보다도 효과 만점인 동적수행법(선율)이자, 자유롭고 실용적인 삶의 기술이다.

업사이클링장난감 '리봇' [사진: 선율]

이 글을 읽는 그녀, 혹은 그가 혹시라도 셀프로 집안의 벽이나 문이라도 칠할 기회가 생긴다면-?! 


-망칠까 봐 두려워하는 불안감, 

-잘 칠해야 한다는 강박감

-내집이 아니니 대충살자는 무기력감

을 탄생시키기 보다는 검색과 동영상 등을 잘 활용해서

<---(정- 자신 없으면 저에게 댓글 주세요~^^)


천천히 한 번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작은 캔버스가 아닌 커다란 면을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칠할 때 만나는 

벽과의 대화가 얼마나 힐링되는지, 

얼마나 재밌는 수행인지...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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