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설
수많은 경전들과 수많은 깨달음의 서적들은 아이러니하게 진리, 깨달음 자체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왜 진리는 말로써 설명할 수가 없는가 에 대해 대승기신론에서는 이렇게 알려준다.
모든 진리는 본래부터 물질적인 형태도 아니고 정신적인 개념도 아니다. 지헤도 아니고 앎도 아니다. 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진리의 본질이나 특징을 설명할 수가 없다.
불가설, 그럼 불가설을 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설명하는 까닭은 여래가 중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리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진 언어와 말에 매달려서 설명하고자 하는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진짜 의도는 그릇된 관념과 생각을 버리고 깨달음으로 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세속이든 열반이든 잘못 알고 집착하면 그 마음이 생멸변화하기 때문에 진정한 지혜에 들어가지 못한다.
불가설의 해석오류에 대한 서광스님의 설명
깨달음을 향해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종종 두가지 오류를 범하는 이들이 있다.
첫번째 오류,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그 말에 매달려서 무조건 책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법에 대해 이론적으로 무지하고 논리성과 체계성이 떨어진다. 그 결과 불법의 포교와 발전, 성장을 저해한다.
두번째 오류, 불법을 공부하고 설명하는 궁극적 목적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의 일부나 특정표현에 집착해서 그것을 근거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고집한다.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얻은 힌트는 말, 언어는 그 자체가 이원론적 세계의 가장 큰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과'하는 순간 '사과 아닌것'이 드러나고 '깨달음'하는 순간 '깨달음 아닌것'이 창조된다. 그렇기에 수많은 깨달음의 진리와 책, 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 정도지, 그것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은 이러한 원리들을 마음에서 살펴보고 마음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서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