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알아차림

by 선영

'돈 후앙Don Juan(인류학자 Castenada가 연구한 멕시코 원주민 야키족의 주술사)은 내가 느끼는 세상은 단지 세상의 설명임을 내가 확신하도록 만들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했다.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사정없이 두둘겨 주입된 설명 말이다.' -카스테나다Castenada, 페루태생 미국인류학박사-


의식의 스펙트럼-Ken Wilber를 한 달 째 읽고 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먹고 있어도 먹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책이다. 지식에 집착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책이다. 어느 곳을 펼쳐도 팡팡 나의 가슴에 에너지를 쏘는 듯 하다.


추석연휴의 끝자락에 책상 위 독서대에 펼쳐놓은 368페이지. 지인들과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며 양다리로 읽긴 아까워 그대로 펴둔 제2부 귀화 8 거대할 필터 부분이다. 매 페이지마다 다수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때문에 술술 넘어가기가 어려운 책이지만 그 내용들이 모두 가리키는 것은 어떤 하나에 대한 것이기에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울 수 있는 책이자 보물이다.


내가 느끼는 세상은 단지 세상의 설명임을... 이라는 문장에서 멈춰진다. 명절동안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을 만나고 난 후 다시 문장을 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엄마야 라고 설명하고 있는 세상, 형제자매라고 설명하고 있는 세상, 남편, 자식, 친구야 라고 설명하고 있는 세상.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은 소리없는 진동인 언어와 단어로 세상을 설명하고 주입시킨다. '엄마란 무엇인가' 라는 김주환 교수님의 유투브 강의가 떠오른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엄마라고 주입받은 것들에 대한 증거와 그 진실, 당연하지만 왜 당연한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의 본질... ... '나' 또한 그러하다.


이게 '나'라고 주입받고 그것을 사실이라 믿게 된 '나'는 진짜'나'를 인식하고 자각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우리는 안정되고 싶기에 고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들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억압하기 때문이다. 억압을 강요당하면서도 끝내 강요당한것도, 주입받은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잊어버렸다는 것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닐거다. 어딘가에 눌려 의식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역동차게 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하루는, 돈이 없으면 사람이 좀 위축되지 않냐는 지인의 질문이 어색하다고 느낀 이유가 뭘까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았다. 부정적 연결성을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아 밀어내는 느낌도 있겠지만 돈, 사람존재, 위축 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세상의 설명이 지인에게는 당연한 부정으로 주입되었다고 보여진다. 나 역시 어느정도 그러했다.


우리의 부모들은 항상 돈을 소중히 신성하게 여겼고 어쩌면 사람의 가치도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저울질했을 것이다.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는 존재로 우리는 주입당하며 살아왔다. 하고싶은 걸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돈을 못 벌면 사람구실 못하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사회에 길들여져 있다. 그렇기에 돈을 벌지 않는 존재는 당연히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엉터리 논리를 사실로 수용하고 그 죄책감과 나를 동일시하며 자신을 괴롭히든가, 억압하여 그림자로 만든 후 자기는 그렇지 않다며 그런 인간상을 증오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내면으로 보내냐, 외면으로 보내냐의 차이 같지만 결국 모두 내면, 나의 문제로 간다.


가족들을 만나면서 돈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들이 이런패턴으로 주입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가족사이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가족인가 보다. 나를 물들이는 것도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도 가족이다. 경계없이 하나인듯 경계로 가득한 공동체이다.


돈에 대한 부정적 주입을 인식하고 자각하지 못한다면 주변상황이 좋아져도 아주 잠깐 행복하다고 착각할 뿐 근본적인 해결이 단박에 되기가 어렵다. 진정한 감사와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돈이 많아져도 곧 불안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자기도 안다. 머리론 알겠는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잘 안된다.' 라고 할 수도 있다. 변하기 싫은거다. 지적수준으로는 어느정도 알기 시작하지만 더 이상 바꾸고 싶지 않은 에고가 발동하는 것이다. 에고는 나를 지켜야 하니까, 그게 에고의 역할이니까. 수많은 에고들의 가족체인 '나'의 집을 무너뜨리는 혼란을 우두머리 에고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에고가 눈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 내면의 소리를 좀 더 자명하게 들으려는 노력을 한다면 더불어 좋은 인연들이 나타난다면 드디어 Trans의 문고리 정도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럴려면 판단,구별없이 대상을 그저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명상이 도움되리라 확신한다. 에고의 논리적 잣대질 하는 것을 멈추고 '나는 모른다' 라고 진심으로 읊조리며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시작이다. 명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고 서광스님께서 늘 말씀 하셨다. 되려면 일단 해보아야 한다.


한권의 책보다 한 줄의 문장, 한 단어가 나의 내면에 공기처럼, 빛처럼 확장되는 지금 이 순간.

'세상은 단지 세상의 설명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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