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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따뜻한뿌리 Nov 28. 2022

무작정 산골 살이 2편

나의 똥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똥들은 어디로 갔을까?     

 텔레비전도 없고, 고속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아 ‘띠 디디디 띠’ 소리를 내며 모뎀으로 연결되는 세상과의 접속은 느리기만 했고, 이따금 지직 거리는 라디오만이 유일하게 세상 밖 소식을 들려주었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우린 집을 고치고, 마루를 놓고, 구들방을 완성하는 일로 분주하기만 했다. 그래도 춥기 전에 어느 정도 집수리가 되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배부르고 등 따시니 그새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그때 남편이 제안을 했다. 화장실 양변기를 뜯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럼 아빠 우리 똥은 어디서 눠? “오줌은 누고 싶으면 어떻게 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빠는 “물만 내리면 싹 내려가는 우리 똥, 오줌은 어디로 갔을까?” 하고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땅으로 흘러가나? 강으로 가나? 바다로 가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서로 맞추겠다는 듯이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우리 똥과 오줌도 밭에서 거름으로 사용할 거야 어때?”순간 아주 어렸을 때 사용해 본 푸세식 화장실이 생각이 나서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린 시절 어깨에 긴 작대기를 매고 연결된 고리에 출렁되는 똥통 두 개를 걸고 다니는 똥장군 아저씨와 맞닥뜨리면 ‘으악’ 놀라서 도망 다니던 기억도 소환이 되었다. 푸세식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일단 똥이라는 주제가 재미있어서 똥똥 거리며 쫓아다녔다. 좀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나도 자료를 찾기 위해 책장에 꽂힌 녹색평론을 뒤적이며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의외로 다양한 사례들이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꽤 있었다. 하긴 사람이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일단 난 절충안으로 양변기는 그냥 두고, 밖에 예전 주인이 사용하던 푸세식 화장실 건물이 작은 게 있으니 그걸 활용해보자고 했다. 사실 이사오자마자 눈에 거슬려 없애라고 이야기한 건데 어쩔 수 없이 한걸음 물러섰다. 남편은 일단 그러 마하고 바깥 화장실을 뚝딱거렸다. 푸세식은 나중에 다시 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으니 더 단순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우리 화목보일러에서 나오는 나무재와 톱밥을 겸용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막상 화장실을 만들고 보니 바깥 화장실 이용은 남편 전용이 되고 우린 여전히 집안에 있는 양변기를 사용할 때가 많았다. 나무재를 이용하니 냄새가 나기도 하고, 바로 앞이지만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춥기도 한 데다 아직 익숙하지도 않으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남편의 말이 걸작이다. “길을 두고 산으로 가는 사람은 없어. 일단 없애야 톱밥 화장실을 사용하지”하고 과감하게 집안에 양변기를 철거하겠다고 했다. 기껏 만든 화장실을 혼자 쓰는 서운함도 살짝 묻어있었다. 똥이 쓰레기가 되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로 흘러가는가 아님 귀한 퇴비로 활용되는가에 대한 중대한 선택이었다. 남편은 생태화장실을 시작으로 조금씩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실내에 있어도 최대한 편리하고 냄새도 나지 않게 할 거니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때쯤 나도 다른 귀농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생태화장실 탐방도 몇 군데 해본지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당시 귀농한 사람들이 저녁마다 모이면 생태화장실은 최대의 술안주 거리이자 화두였다. 대신 마당에 생뚱맞게 있는 화장실 건물은 철거해서 깔끔하게 치우고 그곳에 장독대와 꽃밭을 만들 계획을 제안을 했다. 그렇게 화장실 문제는 타결이 되었다.      

 양변기를 철거하고 사각 나무틀을 세우고 사이에 통을 놓고, 위에는 앉을 수 있는 양변기 커버를 올렸다. 그 옆에는 보드라운 톱밥이 담긴 큰 통을 놓았다.  우리가 볼일을 보면 물을 내리는 대신 톱밥을 덮어주면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구조도 단순하고 공간 차지도 별로 되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톱밥은 가까운 목재소에서 최대한 부드러운 걸로 한차 가득 사 왔다. 

“어때? 별로 어렵지 않지?”남편은 자신의 선택에 흐뭇해하였고, 아이들은 볼일이 없어도 자꾸 앉아보고 톱밥을 덮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문명(?)의 호기심으로 들떠서 톱밥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밖에서 놀다가도 얼른 뛰어와서 톱밥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가 놀았다. 심지어 유치원에 갔다가도 “엄마 아까워서 참고 집에서 눌려고 왔어요” 하고 오자마자 톱밥 화장실로 직행을 하였다. “아깝다고?”“집에서 누면 거름이 되잖아요”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똥도 아까워서 집으로 뛰어오게 되었다. 거기다 아이들은 자신의 똥 모양을 매일매일 엄마에게 보고 하는 기막힌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물만 내리면 되는 양변기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을 톱밥을 부으면서 유심히 보게 된 것이다. 산골에서 우리 가족의 삶은 단순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마치 꽁꽁 언 강가 얼음 속으로 물이 흐르듯 흘러가고 있었다.   

다행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손님들이 와도 욕실에 똥통이 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화장실이 왜 이러죠?” 하고 순간 당황해했다. 그럼 아이들은 손님들에게 의기양양하게 화장실 사용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손님이 자주 올 때는 아이들이 그림을 곁들인 설명을 적어 붙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톱밥 화장실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식구가 다섯이니 통은 금세 채워지고 통이 그리 크지 않아 하루에 한 번 똥통을 들어 거름장에 가서 부어주고, 밭을 일구기 위해 베어낸 풀들과 주방에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한 군데 모아 그 위에 다시 톱밥을 부어주었다. 똥과 풀, 부산물이 톱밥과 섞여서 거름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그렇게 모인 퇴비는 처음에 많았지만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부피는 많이 줄어들었다. 우리는 더 많은 거름을 확보하기 위해 풀을 베어 올리고, 또 올리고 거름장이 어느 정도 쌓이면 뒤집어 주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거름장을 3단계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밭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충분히 숙성된 거름은 손으로 만져도 아무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냄새는커녕 구수한 향기마저 느껴지고, 색깔은 검고 부드러운 흙이 되어있었다. 당시 우리와 함께 화장실에 대해 성토를 하던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다시 양변기로 돌아선 경우가 더 많지만 우리는 20년째 톱밥 화장실을 사용하고 거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아까운걸 어디다 버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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