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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나물 랩소디(1)

by 마담D공필재


47살 한정자 씨가 재혼을 했다. 그녀의 재혼 상대는 장수군 번암리의 한 농부였다.

비록 재혼이지만 명색이 초행인데 혼주 없이 신부를 혼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정자 씨의 친구 촐라 씨가 초행에 동행했다.

그날은 정월 대보름이었고 눈이 무진장으로 쏟아졌다. 순천에서 출발하여 남원을 지나 장수로 접어들면서 정자 씨와 철라 씨는 그곳이 과연 '무진장'임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정자 씨의 초혼이 순탄하지 않았으므로 재혼 생활은 순풍에 돛 달고 순풍순풍 살게 되기를 바랐는데 눈에 파묻힌 오지 산골이라니!!

-산골 오지에서 소여물이나 먹일 바엔 혼자 살지

-그래서 가려는 거야. 산골 오지에서 착하게 살다가 죽고 싶어.

-소 백 마리가 싸지르는 똥으로 만든 안녕?

촐라 씨는 소를 100두 넘게 키운다는 촌부와의 결혼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불만은 폭설을 뚫고 벌벌 기어가는 동안 점점 더 커졌고 삭풍에 눈을 뒤집어쓴 감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는 번암리의 나지막한 촌가에 도착하자 마침내

-이 결혼 반댈세!

라는 말로 구체화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커진 불만은 손바닥만 한 마당을 보자 불안감으로 바뀌었고 쿵쿵한 홀아비 냄새를 풍기는 웃풍 서늘한 방에 들어서자 서글픔으로 변했다. 촐라 씨는 검지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빠르게 문질렀다.

-냄새하고는! 차암 극도로 다정한 곳이구만!

그러면서도 누런 사진들이 가득 담긴 액자와 중압감이 들 정도로 크고 해묵어 보이는 나무 침대와 6단 서랍장이 채우고 있는 방을 두리번거렸다.

-이건 뭐 죄다 일제 강점기 때 산 것들이여?

촐라 씨가 눈에 띄는 것마다 시비를 걸며 여러 방식으로 마뜩찮음을 표현하고는 막 방석에 앉으려는데

-이보오. 여산 아재 왔소?

라며 묵직한 꾸러미를 손에 든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섰다. 자신을 여산 아재의 옆집 아짐이라고 간략히 소개한 할머니는 문을 밀고 들어서더니 뻘쭘하게 앉아있는 두 여자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아이고, 아이고, 이삐다 이뻐! 근디 누가 새댁이여? 누가? 호호홋

-이 짝이요 아짐.

당황한 여산 아재 번암리 농부가 고갯짓으로 정자 씨를 가리켰다.

-오메, 좋게 생겼구만 좋게 생기 써. 호호홋

할머니는 공중에 대고 힘차게 손뼉을 치더니 정자 씨에게 들고 온 꾸러미를 불쑥 내밀었다.

-잡솨 봐요. 민망스럽구로, 산 동네라 묵을 거이 있나!

정자 씨가 멈칫거리자 방바닥을 손으로 대충 쓸어 자리를 마련하고 앉은 할머니가 보자기를 풀었다.

거기에는 세월에 긁힌 자국들과 '선학'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고만고만한 크기의 스뎅 찬합 세 개가 들어있었다.

-호호홋! 별 거는 아니여. 보름잉께 호호홋! 호호홋!

말끝마다 호호홋을 연발하던 할머니가 이번에는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며 좀 더 호탕하게 웃더니 찬합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요것은 솔탕이여! 솔버설이라고 소낭구 밑에서만 자라는 버실인디 솔향이 참말로 진혀. 요샌 요 것도 귀해졌어. 새댁 멕일라고 그랬는가 운 좋게 몇 개 따서 말려 갖고 이라고 막 끓여서 퍼 온 거여. 호호홋!

말린 솔 버섯에 들깻가루를 넣어 알맞게 걸쭉한 버섯 탕을 가리키며 할머니는 다음 찬합을 열었다.

-호호호! 묵자 것은 없지만 나가 봄에 끊어서 말린 노물들이요. 요건 우산노물, 요건 고비노물...아! 그라고 요 것은 찰밥이여 호호홋!

마지막 찬합에는 팥이 잔뜩 들어간 붉은 찰밥이 들어있었다. 윤기가 반지르르한 것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쫀득이는 찰밥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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