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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글 대방출

@매사 억울한 중이병 씨3

by 마담D공필재

중이병 씨의 뿌리깊은 억울함은 초등학교 5학년 때도 지속된다.


당시는 내 손위 언니가 공부를 하도 잘 하는 바람에 나는 거의 병풍같은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겁나 잘 생긴 우리 오빠는 따르는 여자가 겁나 많았다.

오빠의 여자들은 대체로 뾰족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힘차게 우리집으로 왔다가는 눈물을 투둑투둑 흘리며 돌아갔다.

그런 여자 중에 내 마음에 아주 딱 드는 촐라라는 언니가 있었다.


촐라언니는 우리집에서 사는사람인가 싶게 또각또각 자주도 왔는데 그날 언니는 오빠도 없는 집에 와서는 여기저기 집안 청소를 하더니 빗자루를 들고 마루 밑을 헤집기 시작했다.


낮은 마루청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청소를 하는 언니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정말 대견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오빠가 왔다.

썩을 놈의 오빠 뒤를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어여쁜 여자가 또각또각 따라서 들어왔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야할 일을 분별할 수 있는 나름의 판단력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채 여물지 못한 잣대를 치켜들고 오빠한테 들이대며 내 존재감을 사정 없이 드러냈다.


-옵퐈항!!이건 아니지. 촐라언니가 있는데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 아무리 언니가 못 생겼어도 그렇지 사람이 뭐 얼굴보고 산대? 글고 언니가 하루 종일 집안 청소를 하고 시방 마루청을 치우고 있는디 저 여자를 데리고 오냐 오빠는? 그게 사람이냐?


나는 허리에 양 손을 야무지게 올리고 오빠와 그 '긴 생머리 그녀'를 힘껏 노려보았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얏!


부지깽이 만한 작대기로 콩대를 털고 있던 엄마가 콩대 대신 내 엉덩이를 세차게 후려친 것이다.


-이놈의 가시내가 안 그래도 속 상해 죽겄구만 주먹 만한게 뭘 안다고 어른들 일에 나서 나서기를? 이 돼 먹지 못한 가시내야


나는 그때 몰랐다.

엄마가 때리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빠였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촐라 언니와 오빠의 막 내린 연애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으나 촐라언니는 버림 받은 이유를 몰랐으므로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그날 내 입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뒤란에서 사태를 지켜보다 엉거주춤 마당으로 나선 촐라언니는 더없이 초라해 보여 눈물 겨웠다.

언니는 머리에 잔뜩 엉겨붙은 거미줄을 미처 걷어내지도 못한 채 싸구려 핸드백을 들처메고는 눈물을 투둑투둑 떨구며 갔다.


그날은 해질 무렵부터 늦은 밤까지 세 여자가 울었다. 나와 촐라언니와 엄마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고요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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