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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면 계속 쓰고 아니면 말고인 글

@월남에서 돌아온 개빙쟁이들1

by 마담D공필재

어떻게 읽히는가?


한자를 몰랐던 어린 우리는, 나는 '욋출입금지'로 읽었다.


뜻은 모르겠으나 이는 뭔가 상당히 음기와 양기가 뒤섞인 음습하고 난삽하며 수상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으며 보암직하며 먹음직하며 지혜롭게 할만한 매우 유혹적인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나는 그 삼촌의 방 주변에 '먼산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다가!' '변소인 줄 알고!','딴 생각을 하다 그만'... 앗!!실수로 그만!! 발이 이쪽으로!!를 가장한, 누가봐도 염탐짓이 분명한 발자국을 촘촘히 남겼다.


그리고 그 머리가 그 머리인 것들이 그 머리를 맞대고 오랜날 오랜밤을 두서 없거나 근거 없거나 텍도 없는 여러 의미를 유추하기에 바빴으며 그럴수록 그 글귀는 우리의, 나의 피를 열기로 데워 가슴이 나날이 핫핫 뜨거웠다.


방을 뒤질 용기!!그러다 들켜서 두둘겨 맞을 결심!!을 굳히며 우리는, 나는 그 삼촌의 방을 털기위해 호시탐탐 벼렸던 것이다.


그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개빙쟁이'였다.


우리 동네엔 그와 유사한 인간군상이 너댓 있었다.

그들은 대개

낮동안에는 벽면에 붉은 페인트로 '욋출입금지'라고 휘갈겨 써 놓은 쪽방에 칩거하며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밤에는 동네 처녀들 서리에 열정을 태우느라 24시간이 모자랐다.


기어이 그 음침한 방구석을 털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들이 읽는 세계명작 잡지에는 글자보다는 사진이 단연 많았다.


그리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나 젖소의 것과 유사한 크기의 가슴을 공격적으로 들이밀고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봉이나 기둥을 잡고 서거나 앉아있는 헐벗은 서양 여자들이 몹시 괴로운 표정으로 학학거리고 있었다.


*개빙쟁이=개병쟁이=재앙둥이(심한 개구쟁이를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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