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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를 줄까, B를 줄까?

by 마담D공필재

우리 회사 식당엔 조리사가 두 분이다.


A는 음식을 진짜 심각하게 못하는데 성격이 무던하고 잘 웃고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


B는 음식을 진짜 잘한다.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고 깔끔하고 다채롭다. 그런데 요리부심이 강해서 누가 주방에 얼쩡거리면 입을 꾹 다물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불쾌함을 드러낸다.


A는 '반찬은 모름지기 나물이지'를 고수해서 무조건 나물 너 댓가지로 식탁을 채운다. 나물 좋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벼서 비빔밥을 해먹으면 뭐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문제는 창의성 따위 꺼내서 집에 두고 오는지 모든 재료에 한결같은 조리법을 사용한다는 거다. 호박이 많으면 두 끼를 내리 호박 나물을 하는데 항상 반달 모양으로 썰어서 새우젓에 볶는다.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할 것 없이 이런 식이다. 질린다. 먹기 전에 탄식이 나고 먹을 때는 짜증이 나며 먹고 나면 배가 고프다.


B는 같은 재료, 하찮은 재료로도 다양한 음식을 맛깔스럽게 해 낸다. 호박 하나로도 호박 부침, 호박 초무침, 호박나물, 호박들깨탕 등 바꿔가며 요리를 한다. 또 닭볶음탕, 잡채 등 반드시 메인 요리를 하기 때문에 대접 받은 기분이고 먹고 나면 배가 부르다.


나는 A가 출근하는 날 가끔 회사 주방에 들어간다. 엄청난 화력을 가진 가스레인지에 커다란 냄비를 올리고 묵직한 국자로 뒤적이면 겁나게 재미지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시금털털죽을 끓이며 나뭇가지처럼 깡마른 손가락으로 매부리코를 매만지는 마녀가 된 기분인 거다.


그래서 눈누난나 떡볶이도 만들고 라면도 끓이고 부침개도 만든다. 그러면 A는 파도 씻어 주고 양파도 꺼내주며 당근도 채 썰어주고 라면 물도 잡아 준다. 그런 날 식당 공기는 가볍고 들뜨고 화기애애하다.


A가 출근하는 날엔 마음이 편안하고

B가 출근하는 날엔 배가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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