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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푸는 썰

@외할아버지와 도채비

by 마담D공필재


@외할아버지와 도채비1


우리 외가는 마을에서 많이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소장수였던 외할아버지는 막걸리를 거나하게 걸치고는 다 늦은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오는게 다반사였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턱수염이 부실해서 뭔가 향리 이미지를 풍겼던 외할아버지는 목소리도 좀 가늘어서 금방이라도 '사아아아또오오'를 외칠 것만 같았는데 그 가는 목소리로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는 정말 혼이 쏘옥 빠지게 찰졌다.


어느 여름날 외할어버지가 당신이 직접 체험했다는 도채비(도깨비)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얼마나 실감 났던지 지금도 마치 내가 직접 본 것 마냥 도깨비의 모습이 생생하다.


달도 없는 그믐밤이었느니라. 장터에서 친구를 만나서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콧노래를 부름시롱 휘영휘영 산길을 걸어가는데 아, 마침 저만치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장정이 호롱불을 들고 총총총 폴짝폴짝 걸어가고 있더란 말이지.


어어어이 젊은 냥반 항꾸내갑시다. 소리질렀지. 아, 기왕지사 함께 가는 길 두런두런 이야기라도 하고 가믄 좀 좋겄소 이보시오.


아무리 불러도 콧방구도 안 뀌고 허영허영 앞서 가. 하참, 야속도 했지. 그래도 그것이 어디여? 멀다믄 멀고 가찹다믄 가차운 꼬부랑 길을 호롱불 덕분에 안 꼬꾸라지고 집 가차이까지 잘 왔제.


하도 고마워서 들고 가던 고등어 한 손을 좀 나눠줄라고 또 불렀어.


어어어이 젊은 양반 덕에 잘 왔는디 이것 좀 갖고 가소.


아 그 소리를 들었는가 사립문 가차이서 딱 하고 서네. 내 허적허적 걸어서 막 고등어를 내미는디 헛 이 사람 외다리여.


아 이것이 그 도채비란 놈이구나 했제. 등골이 서늘하고 다리에 힘이 파악 풀려 그만 주저 앉을 판인디 이것이 어찌 된거여?


아, 그 장정이 호롱불을 땅바닥에 탁 놓더니 푹하고 앞으로 꼬꾸라짐서 푸시식 사라져불드라고.


아침에 도채비 꼬꾸라진 그 자리에 가보니 머시 있었것어?! 바로 살 빠진 썩은 싸리 빗자리 하나랑 푸욱 시든 호박꽃이 하나 떨어져 있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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