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우리 이혼했을 걸요?]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이혼했어요.

by 마담D공필재


호식이는 두 마리 치킨이 아니라 내 남편 혹은 남편이었던, 남편인 듯한, 남편인가? 헷갈리는 남자의 이름이다.


호식이가 어느 날 이혼을 하자고 했다. 들어보니 이유가 그럴듯했다. 그래서 법원에 가기로 했다.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집에서 출발할 때까지도 이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가 계속 갈등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차저차해서 여차저차하러 가려는데 아직도 여차저차해서 마음이 여차저차하다고 짧게(?) 설명을 했다. 듣고 있던 동생이 고성을 지르며(통화가 끝날 때까지 고성을 유지했다) 말했다.

-솔직히, 언니한테나 형부가 사람으로 보이지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으로 안 보였어. 그리고 남자로도 안 보였어. 씨부리씨부리씨부리…!

아무리 한의 정서를 DNA로 물려받은 예·맥족의 후예라지만 남편을 향한 우리 동생의 한이 그렇게 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좀 놀랍고 좀 자존심 상하고 좀 화가 났지만 모두 옳은 말이었다.

그러니까 동생 말은 형부는 경제력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한량 같은 남자이고 그 한량을 한량없이 즐기는 사람이며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 거기다 몸도 남성적인 매력이 없는 사람인데 중학교 때 내 눈에 잘못 씌워진 콩깍지가 여전히 빠지지 않아서 아직도 미련이 있는 거다. 그거 사랑이라는 허상이니 속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으라는 거였다.

나는 속히 법원으로 갔다. 꼭 동생의 말을 듣고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결정에 상당한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중학교 2학년 때 맺은 우리의 인연은 놀랍도록 간단하고 쉽고 빠르게 끝이 났다. 결혼 생활 38년 만이었다.

법원에서 나오는 길에 호식이가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 피아노’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 콩국수 먹고 갈랑가?

고개를 숙이고 엄숙하게 걷고 있던 나는 길바닥 여기저기를 빠르게 훑었다. 다행히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가 없었다. 만약 돌멩이가 눈에 띄었다면 그날 호식이는 저승으로, 나는 감방으로 가서 지금 슬기롭게 종신형을 살고 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참 맛있는 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