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단장의 미아리 고개여
호식이와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는 내리내리 군사 정권시기였다. 이제 막 배꼽 아래쪽에 흑선이 생기기 시작하는 조무래기들을 어따 쓰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때는 중학생들도 군사 훈련을 받았다. 대체 왜?(학도병으로 끌고 가려고 그랬나?)
배가 적당히 나온 예비군 중대장인지 연대장인지 하는 사람이 얼룩덜룩한 예비군 옷을 입고 학교에 와서 잔뜩 거들먹거리며 사열이니 분열이니 받들어 총!이니 뭐 그딴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학생 대대장이란 것이 있어서 같잖은 목검 같은 것을 들고 구령대에 서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그래서 구령대인가?) 전체 학생을 지휘했다.
어느 날이었다.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그땐 알았는데 지금 기억을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대대장을 하던 남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학생주임 선생님이 구령대에서 호식이를 불렀다.
호식이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 불렀다.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가 지속되자 왁자지껄이 수군수군으로 바뀌고 수군수군이 소곤소곤으로 바뀌더니 곧 사위가 적막해졌다. 나를 비롯한 전교생들이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의 팽팽한 기싸움을 지켜보았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숨을 참았음은 물론이다.
그때였다. 이성을 잃은 선생님이 별안간 구령대에서 휘익~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그래, ‘비호처럼’이란 표현은 그럴 때 쓰는 거지. 암 그렇고말고.) 와아~!! 우리는 한마음으로 탄성을 질렀다.
‘나는 듯이 빠르게 달리는 범’처럼 구령대에서 뛰어내린 선생님은 훠이훠이~학생들 사이를 뚫고 호식이를 향해 돌진했다.(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마침내 호식이를 붙잡은 선생님은 ‘뭐라 뭐라 뭐라 이 쌍놈의 새끼야(호식이는 여산송 씨 정가공파임에도 불구하고)’, ‘뭐라 뭐라 뭐라 이 호로새끼야(호식이는 양친이 생존해 계심에도 불구하고)’를 부르짖으며 호식이의 뺨을 여러 차례 후려친 뒤에 귀를 잡아끌고 구령대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가엾어라! 한쪽 귀를 잡힌 호식이는 절뚝거리며 끌려가면서 뿌연 흑 먼지를 일으켰다. 아!! 미아리 눈물 고개, 임이 넘던 이 고개여!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적에)
구령대에 올라선 비열한 비호가 연신 뭐라 뭐라 뭐라 하면서(안 들렸다) 이번에는 목검으로 호식이의 궁뎅이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한 대를 맞을 때마다 호식이는 왼손을 공중에 대고 무참하게 펄럭이며 오른손으로는 궁뎅이를 거머쥐고 구령대를 팔짝팔짝 뛰어올랐다.(아! 가련한 나의 첫사랑이여!)
나중에 내가 물어보았다.
-당신, 그때 왜 안 나갔어?
호식이가 피식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가시내들이 그라고 많은디 여루와서 어찌 나간당가!
그렇다.
우리 호식이는 숫기라고는 팔아먹으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는 학생이었고, 수줍음을 여학생보다 더 심하게 타는 학생이었… 는데, 분명 지금도 어디 가서 돈 백 원도 빌리지 못하는 숙맥인데, 어떻게 나한테 그라고 징헌 남녀상열지사의 연애편지를 보낼 수가 있었을까요잉?
*여룹다/여롭다: 부끄럽다.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