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름의 현생자-호식이
호식이와 함께 텃밭에서 일을 할 때마다 나는' 배꼽 아래 한 치 다섯 푼 되는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부글부글부글).
농사일에 어설픈 사람이라 힘을 끌어 모아 써도 부족한 상황인데 화를 삭이는데 초반 에너지를 모두 써 버리고 팔다리가 후들거리면 그때부터는 분노라는 감정을 추진력으로 삼아 악으로 깡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농업을 근간으로 형성한 우리의 언어는 돌려 말하기, 즉 알아서 혹은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속 터지는 간접화법이 매우 발달하였다. 이는 농경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작업의 효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모든 일을 품앗이나 두레, 놉을 이용해서 함께 해결해야 했고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화합! 다시 말해 손발이 잘 맞는 것! 척척! 그런데 구성원 간에 다툼이 있어 감정이 상한 상태로 일을 할 경우 어떤 손과 발이, 나 여기 있소 잡으시오. 알아서 찾아가 서로 붙들고 We Are the World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절대적으로다가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방식의 대화가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며늘아! 비 오니 장독 뚜껑 닫아라.
소리를 못하고
-오메 징헌 거 비가 또 쏟아지네. 워치까 장독 뚜껑을 열어 놨는디. 이 한심한 것이 왜이라고 정신이 읎을까잉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간접 화법'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라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내 머릿속에는 잡 지식이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이 내가 한 말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말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런 나이이다. 그래서 그냥 뭉뚱그려 주워 들었노라고 밑밥을 깔고 보는 것이다)
-볕이 거의 쐐기야. 막 쏘아. 얼마나 따가운지 해 뜨면 아무것도 못해. 그냥 부침개나 구워 먹음서 빈둥빈둥 해지기를 기다려야지.
텃밭에 나가기 전에 내가 매번 그렇게 딱 알아듣게(?) 당부를 하고 호식이도 대답… 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호식이는 절대 쓸모없는 말은 하지 않으며 쓸모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내가 그 말을 할 때 분명히 둘이 눈이 마주친다.(눈 맞춤과 침묵은 암묵적인 동조니까)그러나 호식이는 초지일관 변함없이 뒷짐을 지고 여기저기를 기웃대며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서성인다.
허허헛! 기다리다 못한 나는 먼저 일을 시작한다. 풀을 뽑는다. 토마토 줄기를 묶는다. 오이를 딴다. 나는 뽑고 따고 묶는다. 호식이는 어슬렁어슬렁 빙빙 돈다. 호식이는 휘이파람파람파람파람! 나는 화가 부글부글부글… 호흡, 호흡, 호흡… 기가 막혀서 죽지 않으려면 호흡호흡호흡! 이것이 우리의 화기애애하고 매우 효율적인 공동작업의 풍경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타작’을 보면 농부들은 쎄빠지게 일하는데 마당 한켠에서 팔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장죽을 빨고 있는 고약한 인간이 있다. 마름이다.
마름의 횡포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마름이 환생했다면 분명 호식이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전생이나 차생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뒷짐을 지고 텃밭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인간이 주야장천 태어나고 또 태어나며 윤회의 쳇바퀴를 빙빙 돌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심증이 짐작을 넘어 확신으로 굳어진다.
내가 땀을 퐅죽같이 흘리며 헥헥거리고 있는 사이에 여전히 기웃기웃 시간을 죽이던 호식이가 영창 피아노 같은 맑고 고운 소리로
-와아! 무화과 겁나 잘 익었네잉? 하나 따 줄까?
말하면
-저걸 그냥 확 호맹이로 쪼사불까
싶지만 가능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원활한 공동작업을 위해?)
-당신이나 많이 드십시오.
어여쁘게(?) 돌려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