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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우리 이혼했을 걸요?]

@눈치도 없고 겁도 없이

by 마담D공필재

호식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아주 어렸을 때는 제주에서 엄마와 둘이 살았고 그전에는 조부모와 고모랑 산적도 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호식이 할머니를 딱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호식이를 무엇으로 죽일까 한참을 연구해야 했다.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마! 그 반지락 장시 딸이구나 잉. 우리 손지 몌느리 감!


우리 마을에서 중학교까지는 5리(약 2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을에는 내 동갑내기 여자애가 여섯 명이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사장거리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학교로 걸어갔다.


그땐 그 정도 거리는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녔다. 으레 그러는 줄 알고 걸어 다녔다. 심지어 아주 들떠서 즐겁고 재미지게 걸어 다녔다.(이제 막 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그 거리는 온갖 추론과 추정으로 가득한 남녀상열지사와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돈독히 쌓기에 아주 알맞은 거리였으므로)


수업이 끝나면 또 교문 앞에서 모였다가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왔다. 돌아오면서도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학교에서 새로 수집한, 주로 ‘우리 반 누가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예의 그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조잘, 조잘, 조잘! 깔깔깔깔, 깔깔! 서둘러! 해지기 전에!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이 ‘서둘러와 해지기 전에’라는 패턴이 조금씩 무너지더니 나중에는 또 다른 패턴으로 굳어졌다. 5리는 한 번에 몰아 걷기엔 버거운 거리이니(아니 왜 갑자기?)


‘빈둥빈둥!’, ‘도중에서 놀다가!’


수학여행을 두어 달 앞두고 우리들은 갑자기 불온해지기 시작했다. 타고 난 저마다의 소질로 자신의 몸에서 가장 깊숙하다고 여기는 곳에 불온삐라 보다 더 불온한 종이쪽지를 숨겨 둔 것이다.


그 불온은 학교 근처에 살던 영옥이 집에서 시작되었다. 영옥이는 위로 건장한 오빠가 둘 있었는데 그 오빠들은 우리가 동경하는 이른바 ‘쌔삥’이었다.

그 시절 쌔삥들은 응당 나팔바지를 입고 땅바닥을 청소함으로써 깨끗한 나라에 만들기에 앞장섰으며, 한국식 팝송 두세 개를 기본기로 장착하여 우매한 젊은이들로부터 동경을 받았으며, 그 팝송은 대게 '야전'이라 불리는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왔다. 정리하자면 영옥이 집에는 뚜껑을 열면 턴테이블이 좌아악 펼쳐지는 야외전축이 있었고 오빠들이 팝송을 들었다는 거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교실 뒤에서 영옥이와 그 무리들이 팝송을 부르며 춤을 추었다. 와아! 쌔삥!!!영옥이 무리들은 둥글게 모여 다이아몬드 스텝이라는 것을 밟으며 양쪽 검지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찔러댔다. 와아 쌔삥! 흥이 더해지자 이번에는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가며 앞으로 내밀면서 뒷다리에 체중을 실어서 공중에서 껑충폴짝 껑충폴짝 날렵하게 뛰어오르는 환상의 춤사위를 선보였다. 와아! 쌔삥!!! 더욱 놀라운 것은 영옥이 무리들이 부르는 팝송!! 와아 쌔삥!!


무엇을 고민하리. 교문 앞에 모인 우리는 영옥이 집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야전 앞에 예를 갖추어 납작 엎드렸다.(얼마나 납작하게 엎드렸던지 그때 찌그러진 내 가슴은 영원히 회복되지 못한 채 지금도 완전 평면을 유지하고 있다.) 와아앗 쌔삥!! 노래가 흘러나오자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심혈을 기울여 가사를 따라 적기 시작했다.


[렛삐끄더짭인더씨레 워킹포더미니브라 나헨데이 에나미블 로스트 밀리브 스폰테 에이포서 마헤이스 마헨데 비비주어 비폰터리 푸라이드 메리 기폰풀 롤리롤리롤리온다리버]


이 암호 같은 가사는 당시 조영남이 번안해서 부른 '물레방아 인생‘으로 미국의 록 그룹 C‧C‧R의 Proud Mary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가사를 받아 적은 후 우리들은 영옥이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였고 방바닥에 다이아몬드를 무지막지하게 그려 받침으로 해서 노고에 보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절정에 다다라 하늘을 향해 껑충폴짝 껑충폴짝 혼신으로 뛰어올랐다. 바로 이 맛이야 이 맛에 작두를 타는 거지!


그런! 그러한! 유행의 최첨단에 합류하게 된 우리들은 이 기술을 숙련공처럼 연마하여 수학여행에서 쌔삥이 되고자 하는 의욕으로 안달이 났다.


적당한 장소가 필요했다. 나무나 수풀이 우거져 우리가 하는 짓거리를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 혹시 들통이 나더라도 뉘 집 자손인지를 알지 못하도록 가능하면 우리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서 진 곳.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리 일곱 명이 껑충거리기에 거리낌이 없을 정도의 넓은 장소!


천운으로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너무나도 적합한 장소를 발견했으니 그것은 바로 호식이네 마을 앞 신작로에 위치한 무덤이었다.


댄싱 퀸을 열망하던 우리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와 동글동글 예쁘게 생긴 두 개의 무덤이 있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서서 냅다 껑충폴짝 하늘로 치솟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레삐끄드 짜압인더 씨레에…


그렇게 며칠 정도 신명을 지폈을까? 이제 어느 정도 달인의 반열에 올라 설만큼(우리 생각에)의 기술을 연마한 우리들은 그날도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로 폴짝 깡충대고 있었다.


-야! 가시내들아! 느그들 시방 뭐 허는 짓거리냐? 갈래난 토깽이 새끼 마냥 폴짝폴짝?


도로 쪽에서 갑자기 변성기를 벗어났으나 아직 여린 티를 벗지는 못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런 염병할! 호식이었다.


호식이는 무덤가 소나무 옆에 자전거를 기대 세워 놓고 자잣밧대 서서는 놀라 자빠진 우리들을 향해 느물 느물 실실거렸다. 이 쌔삥도 모르는 새끼가 토끼라니? 그것도 발정이 난 토끼라니?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들은 손에, 손에 돌멩이를 치켜들고


-음뫄! 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새끼보소! 니가 시방 죽을라고 환장을 했지?


나고 자라면서 부모와 형제와 이웃에게 듣고 익힌 욕이란 욕을 총동원하여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호식이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기세에 놀란 호식이는 어어어 하면서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비틀비틀 자전거를 끌며 달아났다. 달아나면서 연신 소리 질렀다.


-야! 이, 가시내들아! 느그들 인자 죽었다. 나가 느그들 갈래난 거 다 소문 퍼 불라니까 그리 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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