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니 희망이 보였다.

몰랐던 내가 보였다.

by 고든밍지

평소 나는 내가 아주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인 줄만 알고 살아왔다. 직장에서는 성격이 칼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일 처리가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들었다. 남들이 쉽게 대할 수 없는 왠지 깐깐하고 까칠한 성격은 유난히 만만해 보이는 인상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 주었다. 이따금 만나게 되는 예의 없이 선을 넘는 사람들을 차단해 주었다.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질 수 없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게 해 주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이런 이미지는 더 힘들 수도 있었던 사회생활에 얄팍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은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보이는 나의 모습으로 학창 시절부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모든 일에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봤다. 시작하기도 전에 일이 틀어질 경우를 대비한 현실적인 대안을 두세 개쯤 찾아야만 직성이 풀렸고, 책임 소재를 비롯한 모든 것은 늘 확실해야 했다. '그게 가능해?'와 '그건 말이 안 돼.'를 입에 달고 사는 비관주이자였으며, 지극한 현실주의자였다. 한마디로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남이 아는 나였고, 내가 아는 나였다. 나도 줄곧 내가 그런 사람인 줄로만 믿었다.


그러다 우연히 글을 쓰게 되어 한 번에 덜컥 붙어버린 브런치에 요새 내 인생의 가장 화두인 '난임, 임신, 시험관' 등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며 내 근황을 묻는 친한 대학 후배의 연락에 나는 나의 글 링크를 보내주었다. 나는 평소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잘하지 않는 성격인 데다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한다. 내가 보내준 글에는 나의 근황과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다 나와있었기에 추가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 기준에는 아주 편리하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 후배가 글을 다 보고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글이 너무 공감된다. 울컥했어. 그보다 언니, 되게 희망적인 사람이었네. 오뚝이 같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희망, 오뚝이라는 단어는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성격을 잘 아는 현 남편은 남자친구인 시절에도 꽤 자주 말했었다.

"너는 전쟁 나도 안 도망갈 거 같아. 우린 망했어하며 그냥 포기할걸."

그 당시 나는 습관처럼 망했다는 말을 자주 쓰기도 했었지만, 어차피 안될 것이 뻔히 보이면 그냥 포기가 빠르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다시 내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꽤 여러 편을 썼다. 좌절하고, 실패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나서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희망을 찾으려 하면서 글이 끝났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남들이 봐왔던 나, 내가 생각했던 나, 글을 쓰지 않았으면 몰랐을 나의 새로운 면을 이제야 알았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나의 새로운 모습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줄로만 알고 요리를 시작했다. 막상 만드는 요리엔 생각보다 고기가 없었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비건 꿈나무였다는 것을 알았다. 피아노를 치면서는 경쾌하고, 신나는 곡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느린 곡에 감정을 더 잘 실어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발레를 배우면서는 정적으로 보이는 절제된 움직임 안에 사실 부단히 움직여야만 하는 동적인 모습도 같이 있는 것이 특히 좋았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요리, 음악 등 다양한 활동으로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다만, 말과 글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끊임없이 사용하기에 가장 익숙하기 때문일까. 나는 글로써 표현되는 나의 모습이 내가 이해하기에 가장 명쾌하다고 느꼈다.


우연한 계기로 글을 썼고, 새로운 나를 보았다. 나의 정체성을 이제야 조금은 깨달은 것도 같다. 내가 유명하고, 존경받는 작가처럼 엄청난 필력이 있거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써서 내 글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뜻이 아니다. 내 글은 여전히 형편없고, 패턴이 쉽게 읽힌다. 이상한 클리셰가 반복되며, 자꾸만 자기반성에 빠지는 글을 쓴다. 현재 내 상황이 희망을 찾지 않고는 버틸 수 없기에 환경에 맞춘 자기 합리화나 강박적 희망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내 글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 희망은 내가 희망적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는 희망이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며 뭐라도 일단 써본다.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나의 모습이 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보일 것이다. 나의 마음이. 나의 희망이. 또 다른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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