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를 챙기는 시간
보통 사람들이 꾸준히 먹는 음식이라면 뭐가 있을까. 직장인들에게는 커피가, 다이어터들에게는 닭가슴살일 것이다. 커피를 안 먹는 나에게는 약 10여 년 동안 꾸준히 먹어온 음식이 있다. 물론 빵도 떡도 자주 먹지만 그것보다도 더 자주 먹는 게 있다면 바로 나또이다.
나또를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은 약 10여 년 전이었다. 당시 원래 낮았던 혈소판 수치와 더불어 적혈구, 백혈구 수치도 낮아져 범혈구 감소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에 평소보다 더 자주 다닐 때였다. 저녁 식사 중, 언니가 친구의 얘기를 꺼냈다. 내용인즉슨, 평소 혈액검사 수치가 좋지 않던 언니의 친구가 나또를 먹고 단시간에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엄마는 아주 유심히 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부터 우리 집 냉장고에는 나또가 끊이질 않았다. 엄마는 백화점에서, 마트에서, 인터넷에서 나또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 나또는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엄마의 끈질긴 설득으로 자연스레 나의 매일 아침식사는 나또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또의 맛의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나는 평소 청국장도 먹지 않고, 된장찌개도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처음 먹었던 나또는 누런 콩으로 만들어진 나또였다. 콩을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발효된 콩의 첫맛은 토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냄새도 좀 역해서 비위가 상하기 일쑤였다. 나또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면 생기는 실은 나토키나제로 가장 건강에 좋다고 했지만, 끈끈한 점성이 징그러워 최대한 실이 생기지 않게 살살 들어 먹을 때도 있었다.
엄마는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작전을 바꿨다. 그나마 먹기 쉽다는 검은콩 나또를 사 왔고, 김을 같이 먹길 권했다. 처음 먹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먹는다며 인터넷에서 찾아본 꿀조합을 권했다. 확실히 기존에 먹었던 누런 콩 나또보다는 먹기가 편했다. 그렇다고 나또를 단독으로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쉽게 적응될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항상 김에 싸 먹었다. 짭조름하고 바삭한 김 맛이 나또의 맛을 어느 정도 가려주었다.
나또를 약처럼 먹어내었다. 나또를 먹은 후 나의 혈액 수치는 어느 정도 나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낮은 수치이지만, 한창 최저점일 때보다는 올라 있었다. 정말 나또를 먹어서 나아진 건지 다른 이유였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꾸준히 나또를 먹고 있다.
이제는 엄마가 사다 줘서 먹는 반강제(?)가 아닌 직접 내 자의로 사 먹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고수가 되어 검은 콩이 아닌 누런 콩의 나또도 잘 먹게 되었다. 실처럼 끈끈한 점성도 이내 적응되어 누구보다 빠르게 휘저어 많은 점성을 생기게 해서 먹는다. 여전히 나또를 김에 싸서 먹지만 이 정도로 만족한다.
빵과 떡도 꽤 꾸준히 먹지만, 나또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상하게 나또를 거르는 건 뭔가 찝찝한 기분마저 든다. 뭔가 안 먹으면 섭섭한 그런 느낌이랄까. 대단히 맛있지는 않지만 또 맛없지도 않은 맛인데 중독된 것일까. 왜 나는 나또를 계속 먹는 것일까.
나또가 건강식이라는 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먹기 시작했고, 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내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만 찾아먹는 것이 아닌 내 몸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꾸준히 먹고 있다는 뿌듯함도 크다. 나또를 먹으면 내 건강이 더 나아지지는 않더라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는 무언의 확신도 든다.
스트레스가 날아갈 정도로 매콤한 국물떡볶이도 좋고, 선선해진 날씨에 야외에서 먹는 바삭한 치킨도 좋다. 맛있게 먹긴 하지만, 먹은 후에는 괜히 소화가 안되고, 몸에 안 좋은 걸 넣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론 약간의 죄책감도 느껴진다.
반면 나또는 먹어도 먹어도 죄책감보다는 자존감이 높아지는 음식이다. 나또를 먹는 그 시간은 온전히 내가 나를 챙기는 시간 같달까. 나또를 먹는 시간은 소중하고, 아직 나또만 한 소울푸드를 찾지 못했다. 오늘도 나또를 먹는다. 냉장고에 나또가 몇 개 남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