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케빈과 함께
캐럴이 흘러나오고, 각종 송년회에 정신이 없는 요즘, 여러모로 싱숭생숭한 12월은 크리스마스를 빼놓을 수 없다. '크리스마스엔 뭐다? 나 홀로 집에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작된 이 영화는 거의 매년 영화채널에서 사골처럼 방영된다. 영화를 몇 번 봤는지는 감히 셀 수도 없다. 케빈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런데 우리 집에 나 홀로 집에를 안 본 사람이 있다. 바로 내 남편, 그의 이력을 간략히 소개한다. 나와는 1살 차이로 그 시절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통 봤을 만한 타이타닉,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등 내 기준..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를 대부분 보지 않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 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이 영화들을 다 봤는 줄 알았다. 물론 그중에서도 나 홀로 집에는 빼놓을 수 없었다.
우리가 같이 보낸 크리스마스는 연애 기간을 합쳐 올해로 13번째를 맞이한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나 홀로 집에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유독 피부로 느껴진 건 왜 하필 올해였을까. 굳이 집에서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사실 크리스마스엔 할 게 많았다. 스케이트 장을 가기도 했고, 유럽에서 보낸 적도 있었으며, 우리 사이에 굳이 케빈과 함께 셋이 보내지 않을 이유는 많았다.
이번엔 기필코 나 홀로 집에를 보게 하리라 마음먹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남편은 '그거 아직도 안 본 사람이 있냐' 등의 친구들의 계속되는 무시(?)를 견디지 못하고, 나 홀로 집에를 보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영화에도 상식이라는 건 없을 테지만, 그래도 내 기준 아주 기본적인 상식은 나 홀로 집에 쯤은 보는 것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케빈과 함께겠네요." 등의 이런 조크를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이 남편에게도 생겨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에 영화 채널을 틀면 나오겠지만 기다릴 수 없었다. 나 홀로 집에 전편을 볼 수 있는 디즈니플러스를 서둘러 구독했다. 남편은 영화 중간중간 나에게 줄거리를 물어댔다. 예를 들면, 나 홀로 집에 1에서 도둑이 경찰로 위장하고, 케빈네 집에 동태를 살피러 오는데 "저 사람 진짜 경찰이야?" 이런 식의 질문이었다.
나는 스포방지를 위해 입을 꾹 닫았다. 아무래도 1990년대 작품이라 그런지 지금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다. 남편은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애들이 많아도 그렇지. 두고 가는 게 말이 돼?" 물론 말이 안 된다. 지금 사회에서는 아동 학대 중에 방임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내가 어린 시절부터 봤을 땐 말이 되고 안 되고 가 중요하지 않았다.
꼬마 케빈이 나쁜 악당들을 혼내주는 것! 그 부분에 희열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다. 이미 어른인 남편의 시각으로 볼 때, 케빈과의 첫 대면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캐럴과 나 홀로 집에 가 떠오르는 건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처럼 하나의 문화와 전통이 된 것 같다. 남편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생각보다 영상이 촌스럽지 않았고, 치즈 피자가 먹고 싶다는 남편의 감상평을 뒤로한 채 다음 주에는 나 홀로 집에 2를 같이 보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모두가 당연하게 봤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역시 나의 편견이었을까. 채널을 돌리다 중간부터 보기도 하고, 보다가 말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집중해서 보는 건 나도 오랜만이었다. 어쨌거나 나 홀로 집에를 보니 가족의 소중함(?)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느껴져 더 좋았다.
크리스마스에 캐럴과 나 홀로 집에는 역시 빠지면 허전하다. 언제까지 케빈과 함께일지는 모르겠지만, 나 홀로 집에를 대적할 크리스마스 영화가 과연 나오긴 할까? 남편과 케빈의 두 번째 대면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일단, 피자를 시켜보자.
- 사진출처 : 영화 나 홀로 집에 포토 : 네이버 통합검색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