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가 불편한 이유

요즘도 돌잔치하나요?

by 고든밍지

나는 90년대생, MZ세대라고도 불린다. MZ세대라기엔 '젊꼰'(젊은 꼰대) 기질이 꽤 다분한 편이다. 친한 친구들은 결혼을 꽤 일찍 했다. 아이가 둘인 친구도 있고, 돌을 넘긴 아이를 가진 친구들도 대다수다. 그런데 돌잔치를 한다며 연락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요새는 가족과 간단히 하는 게 트렌드라고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었다.


약 7년 전, 입사 초기에는 돌잔치 초대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오곤 했었다. 나도 아는 직원의 딸 돌잔치에 부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점점 사내 게시판에 돌잔치 홍보(?) 글을 올리면 다들 '요새 돌잔치를 누가 올려?' 하며, 저마다 뒤에서 한 마디씩 했다. 어느 순간 경조사 게시판에서 돌잔치는 사라졌다.


친정 엄마가 연락이 왔다. 엄마 동생인 이모의 아들의 아들, 그러니까 내 이종사촌의 아들이 돌을 맞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모와는 어릴 때는 꽤 친한 사이였지만, 이종사촌과는 왕래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이종사촌의 결혼식에 갔는데 그쪽에서는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아 혼자서만 마음 깊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생신잔치 겸 돌잔치이고, 오랜만에 친척들과 모여 얼굴 보는 자리이니 내심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내가 시험관을 하고 있어 그런 자리가 불편하다면 안 와도 괜찮다는 말도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친척 중에는 아직 남편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외할아버지도 못 뵌 지 오래됐고, 겸사겸사 가보기로 했다. '애는 언제 가지게?'라는 K-친척들의 단골 질문이 꽤 두려웠지만, 보란 듯이 당당하게 가보리라 생각했다.


돌잔치 일주일 전, 같이 가기로 한 언니에게 뜻밖의 내용을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결국 오시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왠지 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돌잔치는 우리가 생각했던 돌잔치와는 달랐다. 내가 생각한 돌잔치는 예전에 했었던 대규모 돌잔치가 아닌 가까운 친척들이 한정식 집에 모여 소소하게 축하하며, 식사나 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신도시의 돌잔치를 전문으로 하는 파티룸을 빌려, 직장동료, 지인, 친척 등을 모두 초대해 예전에 많이 했던 성대한 돌잔치의 형식이었다. 단순한 식사자리로 생각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소소하게 친척끼리 오랜만에 얘기나 나눌 수 있을까 해서 가보려고 했는데 결혼식 정도는 아니더라도 꽤 큰 행사였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물론 돌잔치는 부모의 자유이다. 내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 주위에 의견을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그 사촌, 몇 살이야?"였다. 사촌 부부는 모두 나와 동갑이었다. 나도 MZ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일까.


고민을 하다가 최근에 돌이 지난 아이가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물었다.

"OO아, 요새도 돌잔치해? 보통 친척들도 참석하나? 직장동료들도 온다는데... 가는 게 맞는 건가?"


친구는 본인은 상견례처럼 직계 가족만 했다고 말했다. 그건 부모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양가 어른들이 크게 하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아이의 돌을 성대하게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 너무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지 말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결국 난 그 돌잔치에 가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가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영 내키지 않았는데 시험관 일정이 잡힌 것이었다. 돌잔치는 일요일이었다. 난자 채취를 했고, 살아남은 배아가 버텨준다면 시험관 인생 1년 만에 첫 신선이식을 하는 날과 같은 날이었다. 배아가 죽어버리면 이식 당일에도 취소된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으나, 결국 두 개의 난자 중, 하나의 배아가 살아남아 이식할 수 있었다.


돌잔치를 다녀온 친정엄마의 말로는 성대하게 마쳤다고 한다. 나와 이종사촌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이고, 나는 '그런 돌잔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내 성격상 시험관 일정이 없었으면 계속 고민했겠지만, 결국엔 갔을 것이다.


내 배아가 이식이라도 할 수 있기를, 이식이 되면 부디 착상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생각해 보니, 힘든 과정을 거쳐 탄생한 아이의 첫 생일을 누구보다 축하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문득 이해가 갔다. 사촌 내외는 시험관 시술 등으로 어렵게 임신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산으로 인해 3개월 정도 아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지냈다.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마음 졸였을 부모의 마음, MZ 세대나 요새 돌잔치 트렌드를 떠나 그 누구보다 열렬하게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예전의 성대한 돌잔치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그들이 그런 마음에서였는지는 묻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서 나도 아이가 생긴다면 왠지 그럴 것 같은 미래(?)도 겹쳐 보였다. 내 생각의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면 많은 것들이 불편해진다. 마음을 좋게, 편하게 먹어야 아기 천사가 찾아온다는데... 불편하게 여겼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일까.


늦었지만 축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은 게 2년 반 전인 이종사촌과의 카톡창을 용기 내 열었다. 부모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꽤 가까이 온 것 같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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