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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lee Nov 15. 2024

12. 결정사에서 만난 사람들 - 2.삐딱이

(어머님.. 저 집에 좀 갈게요)

사시를 만나고 왔지만 내 마음을 추스르며 매칭을 계속 받았다. 끌리는 매칭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격이 비싸지 않았기에 곧 다음 프로필을 수락했다. 두 번째로 만난 남자는

서울 거주

법대 졸업, 직업 공무원

취미는 골프

형 두 명 있고 모두 각 회사 대표

집안 경제력 50억, 30평대 아파트 마련함


교육직 공무원에 주 4회 골프를 친다고 했다. 이번엔 남자 쪽에서 먼저 수락을 했다. 사진도 맘에 들고 다 좋았는데 다만 내가 걸리는 부분은 다른 것이었다. 고민하는데 매니저에게 문자가 왔다.



"윤지 님 왜 수락 안 하고 계세요?"

"매니저님, 남자분 집안이 너무 좋으세요. 저 좀 부담스러워서 고민 중이었어요. 학벌도 너무 좋으신데.."

"윤지 님, 조건이 좋은 게 단점은 아닌 것 같아요. 연봉은 울 회원님이 더 높으시잖아요~^^ 나이차이도 좋고 남성분도 바로 수락하셨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

"매니저님, 근데 관심사는 저랑 안 맞으실 것 같아요. 저는 골프에 취미 없는데요ㅠㅠ"

"윤지 님, 제가 살면서 여성분이랑 관심사가 맞는 분을 본 적은 없어요^^ 근데 분명한 건 남성분 소탈하고 참 좋으신 분이에요"



10만 원이 인연을 만나는데 아낄 만큼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수락을 했다. 만남 약속은 남자가 사는 집 근처로 잡게 되었다. 크게 상관없어서 내가 가겠다고 했고, 약속 전날 카톡이 왔다. 카톡 아이디는 공환님 285였다.


"공환님 285 - 안녕하세요 저는 김공환이라고합니다~ 반갑워요 일욜날 뵙도록 하겟습니다 갑사합니다~"


맞춤법 도대체 뭘까? 저 카톡 이름 뒤의 숫자는 뭘까? 발 사이즈인가...? 맞춤법 잘 모른다고 이제 와서 안 만날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갔다.



만나러 갔는데 카페에는 삐딱하게 앉아있는 불량한 남자가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그분이 맞았다. 여기서 삐딱하게는 그냥 삐딱하게 가 아니고, 상체가 옆으로 45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표정관리를 잘하고 얘기를 하는데 길게 말하면 몸이 좀 꼬이셨다. 목소리는 큰 데 말도 정말 어눌했다. 그리고 그 카페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공환님 285'와 대화하는 동안 주변에서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이 많은 카페였는데 아주 조용했고 주변 사람들과 눈이 길게 마주쳤다. 네... 저 지금 장애인이랑 소개팅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아 글 쓰다 보니 생각나는 대화가 하나 있다.


"아참 카톡아이디에 285는 무슨 뜻이에요?"

"집주소...인데... 까먹어서 했어요 나중에 찾으려고요"


궁금증 해결!


그래도 어찌저찌 한 시간 정도 얘기했는데 아무리 짜내도 할 말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이분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전공도 맞지 않았고 살아온 환경도 너무 달랐다. 어린 시절 얘기까지 꺼냈다가 이 정도 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환님 285'도 이만 일어날까요? 해서 그러자고 하고 일어났다. 근데 건너편에서 계속 쳐다보던 우리 엄마뻘의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남자분 맘에 안 드세요?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 아니에요?"

"네...? 남자분이 먼저 일어나자고 하셨는데요"

"아니 그래도 더 얘기해야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내가 얘 엄만데, 다시 앉아서 얘기 더 해요"



아........... 어머님이세요?

내 대뇌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날 알게 되었는데 너무 충격을 받으면 말을 못 한다. 그리고 어머님 눈도 크시고 키도 크셔서 좀 무서웠다. 나 집에 간다고 계속 그러면 맞는 거 아냐?


그 뒤로 15분 정도 더 이야기하고 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길로 나와서 백화점에 갔다. 가서 비싼 구두를 샀다.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줘.라는 의미였다. 사고 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친구한테 전화했다. 사실 내가 결정사에 가입했다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가입했는지 말했다. 짧은 치마 입으라는 말 듣고도 참았다고, 그리고 나 지금 이런 사람 만났다고 말하면서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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