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끝낼 수 없는, 집안일

완벽주의자 내면탐구 (3)

by 김제리

계절이 바어 집안 곳곳을 뒤집어 엎었다. 주기적으로 정리를 하는 것 같은데, 매번 만족스럽지가 않다. 안쓰는 물건은 왜이렇게 많은지, 왜 모든 물건이 여기하나 저기하나 있는지. 있는데 또 산 물건, 사놓고 쓰지 않는 물건들이 내가 소유한 그 어떤 물건보다도 비싼 바로 내 부동산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


쓸모없는 물건들이 차지하는 공간의 가격을 계산하는 것보다도 힘이 빠지는 지점은 매 년 매 계절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데도 집안 곳곳은 왜 완성이 안되고 늘 제자리인가 하는 점이었다. 하다못해 결과가 누적이 되어서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 것 같은데, 짐이 매년 늘어나서 결국은 도돌이표인 영원한 미완성의 상황이 내 마음을 괴롭혔다.


살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의 목표는 손이 가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집이었다. 모든 물건은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고, 가장 효율적인 동선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에너지의 낭비가 없으며, 나의 하루 일과에 맞춘 아름다운 스마트홈 루틴에 의하여 가전들이 통제되는. 물론 하루아침에 완성될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마음 속에는 나혼자 상상한 완벽한 집안살림의 이상향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현실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소 갸우뚱할 것이다. 회사에서 내 사무실 책상 자리, 친정에 살던 시절 내 방, 내가 아침에 두고 나온 우리집 싱크대.. 내가 머문 그 어떤 곳도, 한평생 깔끔한 적이 없었다. 한평생 나는 부지런떨면서 정리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런데 살림 이상향은 왜 저러냐고..? 글쎄다, 아마도 그런 괴리감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게 되면서 더욱 커져갔다. 내 냉장고에는 칸칸이 자리가 정해져 있었는데, 남편은 장을 봐오거나 먹을 걸 사오면 그냥 아무 빈자리에 넣어놨다. 라벨을 붙여놓은 적도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에 맞춰 돌아가던 로봇청소기는 나와는 다른 시간에 집에 머무는 남편의 생활패턴 때문에 루틴을 잃어갔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통제불가의 상황은 더더욱 잦아졌다. 이번달에는 머리쿵 방지쿠션이 필요하던 아이가 불과 한두달 후에는 외출용 신발이 필요한 식의 상황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속도보다 아이의 물건이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 속도가 빨랐다. 밤이든 낮이든 언제 깰 지, 언제 아플지, 언제 기분이 상해서 칭얼댈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를 키우면서 루틴을 논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고백컨데 그 와중에도 나는 루틴을 만들고자 부던히 애쓰며 먹놀잠과 낮잠 횟수를 연구했더랬다..)


이런 상황이 몇년쯤 반복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을 하는 나의 자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 쯤, 불현듯이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이건 평생 끝나지 않는 일이구나.


집안일에 완료 상태라는 것은 없다.

다 끝내고 쉬는 날이란 없다.

그저 매일, 매 계절, 매 해마다 유지보수를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고 설령 지금의 상황에 맞게 집을 최적화 해놨다고 할지언정 가족 구성원의 니즈는 상황이나 나이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당연히 계속하여 새로운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로 집안일의 결과는 누적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음이라고 적는 것이 내 어리석음의 반증 같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깨달음이었다. 책장을 한번 완벽하게 정리한다고 해서, 그게 천년만년 유지될리가 없고 사실 유지되어서도 안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나는 살림 5,6년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집안일을 대하는 마음이 좀 더 가볍고 편해졌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완벽한 상태를 위해서 지금의 행위 또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다면, 이제는 어차피 내일 또 할 설거지인데, 오늘 100%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의 마음가짐으로 바뀌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의 주방은 지금이 더 깨끗하다. 핑계같이 들리겠지만, 과도한 중압감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영원히 완료 상태로 바꿀 수 없는 일. 세상에는 집안일 말고도 그런 일들이 많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깔끔하게 끝내고 완성하여 잊어버릴 수 있는 성질의 일이 몇이나 될까.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고, 완료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살다보면 꾸준히 해나가고, 매일 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완벽한 양치질을 마스터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지만 매일 거르지 않고 3번의 양치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듯이.


오늘 뒤집어엎은 옷장은 나에게 일주일 정도의 기쁨을 준 후, 반년 후 쯤에는 또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겠지만, 반년 후의 나는 오늘보다는 그래도 좀 더 수월하게 옷장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철마다, 해마다 집을 돌보고 정리하고 쓸고 닦은 경험들이 나에게 쌓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레벨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리의 결과는 누적되지 않을 수 있지만, 수년간의 하루하루들은 그렇게 나에게 쌓여가고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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