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잘하고 싶었던건데

완벽주의자 내면탐구 (1)

by 김제리

그림을 그리는 여섯살 아들은 쉼없이 투덜댄다. 선이 제대로 안 그려진다, 이 색이 아니다, 잘못 그렸다 지우고 싶다, 엄마가 그려 봐라, 꽃이 이렇게 생기면 안 된다, 다시 하고 싶다, 집에 은색 연필은 왜 없냐, 나는 잘 못 그리는 것 같다, 이 초록색이 아니다, 마음에 안 들어서 구겨버리고 싶다... 자책과 짜증이 섞인 무한반복 불평불만을 듣고 있자면,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하... 그렇게 투덜대면서 하면 잘하던 것도 못하겠다.

열심히 집중해서 하든가, 하기 싫으면 하지마!!


어린 시절 엄마가 나에게 했던, 그래서 나에게 어떤 규율처럼 내면화되었던, 그래서 서른 하고도 한참이 넘어서야 의심하기 시작한 그 말을, 나도 내뱉고야 말았다.


어떤 일을 질질 끌고 있을 때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제대로 할 거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할 거면 제대로 집중해서 해라. 그 말은 흡사 나의 의사(하고 싶은지/아닌지)를 존중하는 말처럼 들렸고, 열심히 하라는 말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나는 그 말에 상처받기는커녕 엄마의 말을 충실히 내면화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떻게 괴롭혔는지 살펴보자.


- 학창 시절에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여유롭게 공부하고 싶어서 한참 전부터 계획표를 짜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공부란 게 늘 그렇듯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달려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꾸역꾸역 하다가, 과자도 먹다가, 누워도 있다가, 앉아도 있다가.. 하다 보니 내가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건지, 하기 싫었던 건지 헷갈린다. 역시 이건 제대로 하는 게 아니지, 제대로 안 할 바에는 차라리 쉬는 게 낫겠네, 하고 책을 덮는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시험 전날이 되어서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던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벼락치기로만 시험을 봤다. 100%의 노력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자괴감을 항상 느끼면서.


- 예체능을 배우는 것은 뭐든 재미가 있었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어서 이것저것 손댔었다. 시작은 늘 순조로웠지만 초심자 수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재능도 있고 연습에도 몰두하는 일부 소수의 친구들이 넘사벽으로 발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배우고 싶었던 마음은 금세 희미해져 갔다. 역시, 할 거면 저렇게 제대로 해야지. 내가 몰두되어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완벽한 취미를 찾아 헤맸지만 그런 취미는 마흔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이 나이에도 마땅한 재주도 마땅한 취미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 공부든 일이든 취미든,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다. 과정이란 필연적으로 중간에 농땡이도 부리고, 좀 투덜거리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 것인데, 그 모든 과정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어 보여주기가 싫었다. 그래서 늘 혼자 독서실에 다니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운동했다. 회사에서 완성된 보고서를 보여주는 것은 괜찮았지만, 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 스트레스였다.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은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았고, 누군가에게 그 모습을 들킬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 날씨가 좋아 기분 좋게 바닥청소를 하려고 했는데 집안을 둘러보니 가구의 먼지며, 벽지의 찌든 때, 티비 화면의 손자국을 비롯한 수많은 오염들이 눈에 들어온다. 쓸고 돌아서면 먼지가 쌓여있는 청소의 영역에 완벽이란 없건만,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친다. 다시 소파에 앉는다. 아, 역시 나는 너무 나태해.




아이러니컬하게도 내 기억에 뭔가를 '하기 싫었던' 기억은 없다. 나는 타고나기를 뭐든 하고 싶어 했고, 또 잘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무엇을 해나가는 과정은 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늘 힘들고 어려웠고, 필연적인 투덜거림이나 회피를 동반했다. 하고 싶었던 마음은 곧 다른 이유에 의해 잊혔다.


그것은 사실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실패하기 싫은 마음이었고,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나의 일부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을 키우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냥 좀 뒹굴거리면서 시험공부를 해도 됐을 텐데, 좀 모자란 청소라도 괜찮았을 텐데, 나는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 필요 이상으로 컸고 그러한 불안을 더 열심히 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괴로워했다. 하지만 선이 안 그려진다고 투덜대는 아이에게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고 얘기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투덜댐의 핵심이 '하기 싫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라 그래, 하지만 한 번에 잘 안될 수도 있어.

연습하다 보면 점점 잘하게 될 거야, 한 번에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과정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몰입의 상태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모든 일이 그럴 수는 없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도 있고, 대충 하는 일도 있고, 마지못해 하는 일도 있다. 그렇다고 안 한 게 아니다. 비록 징징대고 투덜거리고 건성건성으로 했을지언정, 하고 싶은 마음과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마침내 해낸 것이다. 뭐라도 해낸 것은 아무것도 안 한 것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한가.


아들에게 말하지만 사실 나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 최선으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한 것보다는 뭐라도 한 게 나은거야.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되는거야. 안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되는거야. Done is better than perfect, 그리고 망쳐도 거기서 얻어지는 게 있을테니까.. 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그냥 시작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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