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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Nov 11. 2024

우노, 우노, 우노...

 피카소 미술관을 나와 바르셀로나 대성당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전철을 타면 빠를 테지만, 거리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목주름에 좋다는 콜라겐 크림도 사야 했고, 그것 또한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거리를 걸으며 약국이나 화장품 가게가 보일 때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진을 보여주면, "No hay"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게 다였다. “없어요”라는 뜻인데, 그 소리 들은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여행 기념품으로 소설 창작 모임 회원들에게 하나씩 선물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마침내, 전철역 근처의 약국에 들어갔다. 사진을 보이자, 점원이 밝게 웃으며 콜라겐 크림을 꺼낸다. 내가 본 바로 그 크림이었다. 순간, 내가 스페인어를 한다고 착각했을까? 손등에 크림을 발라주며, 점원이 열심히 제품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보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점원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몇 개를 원하십니까?”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눈치가 그랬다. 내가 아는 스페인어는 '올라' (안녕), '그라시아스' (고맙습니다), '우노' (하나)뿐이었다. 나는 양손을 쭉 펼쳐,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우노, 우노, 우노, 우노, 우노, 우노, 우노, 우노, 우노, 우노... 토털 텐!”

손을 다 접을 때쯤, 점원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가게에 있던 사람들도 나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하이파이브와 주먹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점원은 크림 열 개와 작은 용량의 크림 다섯 개를 서비스로 주었다. 딸에게 콜라겐 크림을 자랑하며, ‘우노’ 이야기를 해주었다. "난 지금까지 샘플이나 서비스 받은 적 없는데, 그 점원은 아빠가 정말 웃겼나 봐. 아빠가 쇼핑을 더 잘한다는 걸 이제 알겠네!"

그 순간, 어깨가 으쓱하며 아주 잠깐 자신감을 찾았다.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는 마치 중세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곳이었다. 골목마다 이웃들의 얼굴, 마음, 영혼이 벽돌 속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따라 걷다 보니, 로마 시대의 건축물부터 현대적인 건물까지 천천히 지나쳤다. 사거리에서는 옛날 안기부 건물도 보였다. 그곳에서 민주화가 시작되었고, 지금은 경찰서로 바뀌었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이 거리의 모든 건축물은 마치 시간이 멈춘 예술작품 같았다. 길거리에서는 강아지를 안고 사진값을 받는 노숙자를 봤고, 그 옆에서는 즉석 복권을 긁고 있는 또 다른 노숙자가 있었다. 기타를 치며 버스킹하는 가수도 있었고, 골목골목마다 시간은 거슬러 흐르며 모든 것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드디어 바르셀로나 대성당 광장에 도착하니, 광장 한가운데 골동품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날리며 뛰어놀고, 피아노 소리가 공기 속에 퍼지며, 그 옆에서는 키스하는 연인이 있었다. 모든 풍경이 마치 한 장의 오래된 사진처럼 마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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