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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Nov 18. 2024

인종차별 같은데?

내일이면 여행이 끝난다. 그래서 오늘은 쇼핑! 그리고 또 쇼핑! 오전에 열심히 쇼핑한 후, 점심 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며칠 전부터 지나다니면서 봤는데 항상 줄 서 있는 데가 있더라고. 궁금하지 않아? 거기 가 보자!”

“뭔데, 무슨 메뉴인지도 모르면서?”

“알 게 뭐야! 사람이 많으면 무조건 맛집이잖아.”

그렇게 들어선 식당(Casa Alfonso)은 입구부터 하몽이 쭉 걸려있었다. 뭔가 스페인 정통 분위기가 풀풀 나는 곳이었다. 기대에 부푼 우리는 12시에 딱 맞춰 도착해 대기 없이 들어갔다. 웨이터가 친절하게 입구 근처 자리로 안내했다. 쇼핑하느라 손이 지저분해 화장실에 다녀온 후 식당 내부를 둘러봤다. 식당 안쪽은 시간여행을 한듯 영화 세트장처럼 고풍스럽고 멋졌다. 와~감탄하다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안쪽 테이블은 백인들이 앉아있고, 입구 쪽 테이블엔 동양인만 앉아 있는 거지? 설마, 인종차별인가?

"아빠, 나도 화장실."

"안쪽에 있어. 화장실 갔다 오면서 안쪽 분위기 좀 봐."

"왜? 거기 뭐 있어?"

조금 후, 화장실을 다녀온 딸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돌아왔다.

"와, 아빠! 안쪽은 영화 세트장 같아, 너무 멋있다!"

"그렇지? 그런데 왜 우리가 이쪽에 앉아야 하는데? 동양인이라 차별하는 거 아니야? 분명 인종차별이야.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어쩌려고?”

“테이블 바꿔 달라고 요구하고, 안 된다면 나가자.”

싸울 준비를 마친 나는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 테이블을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웨이터, 쿨하게 "오케이!" 하면서 척척 안쪽 자리로 우리를 안내하는 게 아닌가. 어? 이거 뭐지? 나는 싸울 준비가 완벽했는데…, 이렇게 쉽게 자리 바꿔주면 준비한 내 대사는 다 어디로 가는 거야?

“아빠, 인종차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어쨌든 영화 세트장 같은 멋진 자리에서 하몽과 빠따따스 브라바스, 바삭바삭한 빵 위에 토마토를 얹은 판콘토마테를 맛있게 즐겼다. 특히 하몽! 와,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이게 하몽의 진짜 맛이구나! 그동안 왜 하몽, 하몽 하는지 몰랐는데 오늘 드디어 깨달았다. 여행 끝나기 직전에 담백하고, 고소한 하몽맛을 발견하다니 억울하지만, 어쨌든 럭키 비키!

"아빠, 이 집 맛있네. 진짜 잘 왔지?"

"맛있네. 나중에 하몽 맛이 그리워지겠다.”

“인종차별이라며 나가자며?”

“나만 느꼈어? 너도 살짝 그런 느낌 받았잖아.”

“나도 혹시나 했지만 아니었잖아.”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상은 아직 차별이 존재하잖아. 그래서 그랬지.”

“차별 없는 세상이 오면, 신경 쓰지 않고 맛있게 먹을 날도 오겠지?”     

 우여곡절 끝에 유쾌하게 마무리한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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