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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얼굴들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 다녀왔습니다.

by 윤희웅

쉽게 잊지 못할 하루였습니다.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전 이름은 안양 소년원, 지금은 정심 여자 정보 산업 학교. 소년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차갑고 냉랭한 시설이지만,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는 달랐다. 아이들은 헤어디자인, 피부미용, 제과제빵 같은 다양한 직업 교육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정문에서 출입증을 받고 철조망과 지문인식으로 통제된 공간, CCTV가 설치된 화장실 학교인듯 하지만 학교는 아니었다.


오늘은 학기를 마무리하는 학예회가 열린 날이었다. 우리 지구인 수어 합창단은 초청 공연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강당에서 리허설을 마친 뒤, 담당 선생님은 우리에게 주의사항을 전했다. 아이들이 말을 시켜도 대답하지 말고, 말도 시키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토닥이는 등, 신체 접촉은 절대 금물이라고 했다. 얼마 후 아이들이 강당에 입장했다. 14살에서 16살 사이의 단발머리 여학생들, 아직도 뺨에는 통통한 젖살의 부드러움이 남아 있었다. 이런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어떻게 저질렀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저려왔다.

"언니들 들어온다. 고개 숙여."
그 말을 신호로 중학생 아이들이 고개를 떨구었다. 선생님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규칙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니들이 입장하고 그 사이를 선생님이 서있었다. 서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초점 잃은 눈동자로 무심하게 무대만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가 준비한 수어 공연 ‘아빠가 딸에게’는 양희은 노래 ‘엄마가 딸에게’를 개사한 노래였다. 부모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랬을까? 공연 중 아이들을 바라보니 몇몇은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후 사회를 본 선생님은 우리에게 팀 소개와 덕담을 부탁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안산에 살고 있는 지구인 수어 합창단입니다. 각국의 이주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글도 잘 모르던 시기에 우리는 모여 한국 수어를 배웠습니다.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이주민 여성이나, 청각 장애인은 한국 사회에서는 모두 소수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수자의 아픔을 알고 있는 우리 이주 여성들은 농아인과 어울려 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뿐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있는 이주민 여성들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여러분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행복한 사회를 꿈꾸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외계인의 침공을 막고,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구하거나, 지키는 독립군도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 계신 분들이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지키시기만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직업 교육을 받고 나가 새 삶을 살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군요.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는데, 어른으로서 부끄럽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 핀란드가 인정한 세계 유일의 공식 산타클로스가 한국을 방문했다. 450살이라고 농담을 덧붙이는 그는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습니다. 울거나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에게는 큰 포옹이 필요할 뿐이죠. 나는 모든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산타의 말은 그날 만났던 아이들과 겹쳐 보였다.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의 아이들 역시 말썽을 피운 적이 있을지라도, 품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을 향한 따뜻한 포옹, 그리고 진심 어린 관심이 필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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