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앉아있는 순서대로 입장합니다. 제가 다음이요 하면 두 사람씩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럼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부터 입장하겠습니다.”
앞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 분, 아니 십 분쯤 지나자 두 사람이 나왔다. 진행자가 문을 열고 ‘다음이요’ 했다. 앞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들어갔다. ‘다음이요’, ‘다음이요’, 이십 쌍의 부부가 이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넉넉잡아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이혼 자판기 같았다. 우리는 서류를 한 장씩 들고 가정법원 문 앞에 서있었다. 문뜩 올려다본 하늘은 조각구름이 떠다니는 맑은 하늘이었다.
“젠장, 이혼하기 딱 좋은 날씨다. 날씨도 좋은데 우리 마지막으로 밥이나 같이 먹을까?”
“우리 방금 이혼했어.”
“마지막으로 밥 한 번 먹자는 것도 안 돼? 정말 너무 하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이혼을 하는지, 아니 왜 이혼을 당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그녀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랬지.”
“당신에게는 오직 당신만 보이고 당신만 소중하지. 내 감정 따위는..., 그래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니? 이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알려줄게. 이게 이유야.”
그녀는 돌아서서 가정법원 문을 걸어 나갔다. 아주 천천히 그녀는 나에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멀어져 가는 그 녀를 멍하니 바라만 봤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이혼 참, 쉽다.’
차 안에 앉아 룸 밀러를 통해 나를 바라봤다. 퀭한 눈동자, 덥수룩한 수염, 푸석거리는 피부, 나는 턱을 만지며 수염이라도 밀고 올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나는 30년을 생산직으로 근무를 했다. 30년 근무 중 외출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휴가나 조퇴도 없이 일만 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탈 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더욱 쉴 수가 없었다. 생산 현장에 있어야 나의 존재감이 생길 것 같았다.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하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안경을 벗어 옆 좌석에 던졌다. 운전석을 뒤로 넘겨 눈을 감고 누웠다. 잠시 후 잠긴 눈에서 한줄기 물이 흘러내렸다. 귀찮아서일까? 나는 흐르는 눈물을 그냥 흘려버렸다. 주차장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어느새 밖은 어둠이 짙게 내렸다. 깜박 잠이 들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혼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끝까지 물었어야 했다. 아니,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했어야 했나?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어둠이 깔려있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로 스며들어 갔다. 어디로 가야 하나? 노인네 이 빠지듯이 가구가 듬성듬성 빠져있는 집으로 들어가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갈 곳도, 만날 친구도 없었다. 사거리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잠시 주춤하는 사이, 뒤에서 경적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 대가 아닌 여러 대의 경적소리였다. 사거리 한가운데서 나는 방향을 잃었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났다. 어지러웠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앞 차만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달리고 있었다. 앞 차가 속도를 줄이면 같이 줄이고, 앞차가 속도를 올리면 같이 속도를 올리며 그렇게 달렸다. 나는 오직 남들하고 속도를 맞추는 일에만 열중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남 보다 앞서지는 못했어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달렸다. 사람들 눈에 띄지는 못해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달렸다. 그 자리에, 그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나였으면 했다. 30년을 그렇게 달렸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뒤통수가 따끔거리며 눈앞이 흐릿해진다. 혈압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젠장, 왼쪽 귀에서 이명 소리까지 들렸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이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끝까지 도장을 찍지 말았어야 했다. ‘너의 남은 행복을 위해서 이혼해주는 거야’ 같은 개소리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 너만 행복해져야 하는지 묻고 따졌어야 했다. 그럼 나는, 그럼 나는..., 불행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나와 같이 사는 시간이 불행했다면 그래, 죽을 때까지 나와 같이 불행했어야 했다. 주먹으로 핸들을 쳐가며 소리를 질렀다. 나의 목소리는 달리는 차들의 소음 속에서 존재감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다섯 가구가 공동으로 화장실을 쓰는 다가구 주택. 작은 부엌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살았다. 비키니 옷장에 텔레비전 한 대가 전부인 방에서 변비 걸린 그녀는 우는 아이를 둘러업고 볼펜을 조립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삼 년, 아니 사 년쯤 지났을까? 이사 간 집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던 그녀였다. 날이 좋은 휴일에 동네 공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했었다. 이제는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며 월급날이면 외식을 하던 중국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는 왜 이혼을 했을까? 술을 가끔 마시기는 했어도 주정을 부리거나 여자를 때리거나 하지 않았다. 담배도, 도박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회사만 다녔다. 그런데 왜? 이유를 모르겠다.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들은 이혼한 부모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몰려왔다. 머리가 어지러워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겠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운 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쳐다보니 경찰이 서 있었다. 창문을 반쯤 내리고 경찰을 올려봤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별일 없는데요.”
“울고 계시는데……, 어디 아프십니까?”
“아프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면 위험합니다. 어서 출발하십시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이렇게 있는 중입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어서 출발하세요.”
“어디로 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니까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출발하세요.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면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세요.”
차는 출발을 했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 것이 꿈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출발했던 곳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려야만 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