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면접

by 윤희웅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자소서에 보면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뽑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 면접자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부모님을 많이들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불쾌했다면 답을 안 하셔도 됩니다. 부모님을 존경하는데 딱히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나는 서른 살이 넘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입사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기에는 세상을 너무 모르는 나이다. 나는 그 어디에도 서 있을 수 없는 경계선에 서 있는 나이였다. 오늘 면접에 실패하면 나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나이도 어리고 스펙도 화려한 그들과 더 이상 경쟁을 하며 이겨낼 용기도, 능력도 없었다. 지금 면접관이 하는 마지막 질문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아침부터 시작한 면접이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면접관들은 아침부터 같은 질문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지치고 무료했을 것이다. 나의 이력서와 자소서를 성의없이 넘기는 그들의 손끝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질문이라, 이것은 나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저의 아버지는 중소기업 생산직으로 30년을 근무하셨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중소기업 생산직의 임금이 후하거나, 복지가 훌륭한 편이 아닙니다. 스무 살의 아버지에게도 화려한 많은 꿈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직 책임과 성실로 30년을 근무했습니다. 아버지는 수시로 말씀하셨죠. 일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다만 일을 배울 때 성실해야 한다. 분명 작은 나사라도 역할이 있다. 작은 나사들이 모여 큰 기계를 돌리는 법이라며 아버지는 작은 역할에도 신중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행동으로 성실과 책임 그리고 신중함을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면접관들이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을 분명히 봤다. 나의 대답이 그들이 수없이 들었던 대사 중 하나였을 것이다. 반전이 필요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대로 면접에 실패하면 또다시 취준생으로 아버지에게 기생해야 한다. 어두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며 눈앞이 캄캄했다.

“훌륭한 아버님입니다. 그럼, 아버님이 얼마나 성실하고, 신중하신 지 간단한 예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지막 기회가 왔다. 잘해야 한다. 모두가 아는 식상한 이야기가 아닌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감동적 이야기를 해야 한다. 뭐가 있을까? 모든 아들들이 그렇듯이 나는 그렇게 아버지랑 친하지 않았다. 말도 몇 마디 나눠본 적도 없다. 손에 땀이 차오르며 입술이 바짝 말랐다.


“제가 고등학생 때쯤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길을 걷고 있을 때 자가용 한 대가 제 발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죠. 어머니는 기겁하며 울음을 터뜨렸죠. 그때 아버지는 침착하게 일단 저의 상태를 살피셨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말하니 아버지는 멀어져 가는 차를 잡으러 뛰어갔습니다. 차주와 함께 돌아온 아버지는 차분하게 말씀하셨죠. 차가 발을 밟고 지나갔으니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야겠다는 이야기와 보험처리 방법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무엇을 하셨나요?”

“부끄럽지만 어머니는 차주의 멱살을 잡고, 뺑소니범이라고 경찰을 불러달라며 소리 질렀습니다. 당황한 차주는 결코 뺑소니가 아니라며 사정했습니다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진정시켰죠. 지금 급한 것은 뺑소니가 아니라 병원에 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모든 상황을 지배하며,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일은 어떻게 잘 처리됐습니까?”

“차주와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차주의 명함을 받고, 차주에게 위로를 건네며 일은 잘 마무리됐습니다. 저는 그때 아버지의 신속한 판단과 침착한 사고 수습에 감명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아버님의 침착함은 어디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버지가 살아오시면서 겪었던 많은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어떤 이유를 말씀하시는지….”

“그럼 이렇게 한 번 해봅시다. 지금 아버님과 통화를 해서 아버님이 매사에 신중하고, 침착한 이유가 경험이라는 답을 한다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합격으로 판정하겠습니다. 어때요?”

“정말 합격을 시켜주신다는 말입니까?”

“면접자께서 아버지를 얼마나 잘 알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당장 아버님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해보세요. 저희는 가만히 듣고 있겠습니다.”


면접관의 반짝이는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 나는 몰랐다. 나는 오직 합격이라는 단어만이 내 머리를 맴돌 뿐이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 면접관들이 어서 전화하라는 신호를 줬다. 몇 번의 신호음이 흐르자 나는 침을 삼키며 살짝 긴장했다. 아침에 일어난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올 때 면접장까지 갈 차비가 없었다. 엄마는 집에 없었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식탁 위에 있는 아버지 지갑이었다. 조심스럽게 열어본 아버지 지갑에는 오만 원권 한 장이 들어있었다. 오늘 일주일 치 용돈을 엄마에게 받은 모양이었다. 망설임 끝에 나는 오만 원 한 장을 들고 집을 나왔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면접관들은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라는 손짓을 나에게 보냈다. 나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여보세요? 아버지?”

“너 아빠 지갑에 손댔니?”

당황스러웠다. 면접관들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나에게 계속 진행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차비가 없어서 그랬어요.”

“그럼, 나는 출근 안 하니? 걸어서 갈까?”

“출근 잘하셨어요?”

“안 했다.”

“왜요?”

“몰라서 묻는 거니?”

“죄송합니다.”

“다 쓰지 마라, 내일은 출근해야 한다.”

면접관들의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망했다는 생각이, 괜히 전화를 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제야 면접관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이해했다. 긴 시간 얼마나 무료했으면 이런 장난을 하는지 이해도 갔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였을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면접관들이 원하는 대답을 얻으면 된다. 그 대답이 나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길게 이야기하면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나는 아버지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했다.

“아버지에게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아버지는 매사에 침착하시고, 신중하시잖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게 왜 궁금한데?”

“그냥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이유가 뭘까요?”

“귀찮아서 그래. 세상 모든 일이 다 귀찮고, 하기도 싫고, 성질낼 기운도 없다. 너도 나랑 비슷하잖아. 그러니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집에서 빈둥거리지.”

한 여름밤 한강의 폭죽놀이를 보듯 펑펑 터지는 면접관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의 합격은 하늘 위 높이 솟아오른 불꽃처럼 말없이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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