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by 윤희웅

“선생님, 전화는 왜 안 받으세요?”

“전화했어요?”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무음으로 해놨네요. 무슨 일이죠?”

“오늘 수업에 센터장님이 청강하시고, 수업을 마치면 수강생 평가가 있어요. 오늘 수업은 조금 더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아요.”

“김 선생님,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진작 말씀 좀 주시지.”

“저도 오늘 아침에 들었어요. 그래서 아침부터 전화했는데….”

코로나19로 그나마 있던 수업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처음에는 잘됐다 싶었다. 몇 달 쉬면서 밀린 책을 읽고, 그동안 구상만 했던 시를 쓰면서 쉬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코로나19는 길었다. 일 년이 넘어서자 나는 부득이하게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일하고, 이틀을 끙끙 앓았다. 일주일에 두 번만 일하는데도 곧 죽을 것 같았다. 자전거로 하는 배달 아르바이트로 바꿨다. 돈은 벌지도 못 하고, 허벅지만 굵어졌다. 다시 전기자전거로 바꿔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나마 할 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밤에 눈이 어두워 자주 넘어졌다. 그렇다고 낮에만 배달을 하면, 아파트 관리비 내기도 힘들었다. 공장 일용직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코로나19, 3년을 정말 근근이 버텼다. 책을 읽거나 시를 쓰는 일은 엄두도 못 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쯤, 수업은 다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강사가 넘쳐났다. 수업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나같이 변변한 이력 하나 없는 강사는 이제 자리가 없었다. 이제 강사는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6개월짜리 문화 센터 시 수업이었다. 이 수업으로 나는 사장님처럼 보이는 나이 많은 아르바이트가 아닌 선생이 될 수 있었다. 그나마 나의 자존심에 위안이 되었다. 문제는 몇 년을 쉬다 보니 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과 주부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주부들이 코로나 시기에 책을 많이 읽었는지 수준이 꽤 높았다. 처음에 오십 명으로 시작한 수업은 육 개월이 지난 지금 삼십 명이 남았다. 이대로 가면 다음 학기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수업자료를 다시 한번 검토했다. 인터넷으로 요즘 뜨는 유머들을 검색했다. 마음이 급했다.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배가 살살 아팠다. 아직 십 분 남았으니 화장실에 다녀오는 게 좋을 듯했다. 변기에 앉아서 시작 알람을 들었다. 젠장 늦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느덧 다음 주가 마지막 수업입니다. 그동안 유익한 시간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들의 수준이 높아서 제가 많이 부족했죠? 혹시 질문 있으면 질문받겠습니다. 수업과 관계없는 사적인 질문도 좋습니다. 저, 결혼했습니다.”


아무도 웃어주지 않았다. 뒤에 앉아 있는 센터장의 안색이 어두웠다. 조명 탓이라 믿고 싶었다. 질문이라도 받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만 갔다. 제발, 한 명만 질문을 해줬으면 간절히 바랐다. 그때였다. 앞줄에 앉아 있는 주부가 손을 들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사적인 질문도 괜찮다고 하셔서 사적인 것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저 사적인 질문 좋아합니다.”

“그럼 첫 키스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부탁드립니다.”


가방을 챙기던 주부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일어나려던 센터장이 호기심이 어린 얼굴로 자리에 다시 앉았다. 분주했던 강의실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좋은 기회가 찾아왔음을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30년도 지난 첫 키스 이야기라, 여기 계신 분들 역시 아마 두 번째 키스는 기억이 안 나도 첫 키스는 잊지 못하시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첫 키스를 도둑맞았습니다. 아니 첫 키스의 추억을 선물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야기해 드릴까요?”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참새 반 아이들이 대답하듯이 ‘네’ 소리가 강의실을 울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다음 학기 강의를 맡을 수 있겠구나.


“제가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편지가 대세였죠.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의 시그날 음악 기억나시나요? Frank Pourcel의 연주곡, Adieu, Jolie Candy였습니다. Adieu, Jolie Cand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마 잘 가라, 왕사탕이었죠."


잘 가라, 왕사탕에 모두 자지러지게 웃어줬다. 됐다. 이대로 쭉 밀고 나가면 된다.


"잘 가라 왕사탕보다 안녕 내 사랑이 맞겠죠. 그때는 밤의 디스크 쇼를 듣지 못하면, 학교 가서 친구들과 할 이야기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밤의 디스크 쇼’에서 제 이름이 나왔어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흔적’이라는 필명을 가진 여학생이 나를 좋아한다며 고백했죠. 다음날 학교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때는 지금보다 제 몰골이 더 형편없었어요. 키도 지금보다 작았고, 참고로 저는 군대 가서 키가 좀 컸습니다. 얼굴도 변변치 않고, 공부도 중간 정도였고, 다만 그때 시를 좀 썼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아무튼 방송이 나간 후에 하교 시간에 여학생들이 내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하며 우르르 몰려왔으니 자고 일어났더니 학교 스타가 되었죠. 그리고 얼마 후부터 집으로 편지가 왔어요. 보내는 사람의 이름, 주소도 없는 오직 ‘흔적’이라는 필명만 적혀있는 편지였습니다. 일주일 한 통씩 내용은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죠.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했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편지는 일 년이 넘도록 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가 왔죠. 제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이었습니다. 편지 내용은 이제 편지를 보내지 못한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의 집 근처 어린이 놀이터 그네 앞에서 만나 밤 열 시에 시작하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를 같이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할까요?"

숨죽여 듣던 주부들은 책상을 치며 단체로 하울링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하울링에 나는 기겁을 했다. 하지만 내심 기뻤다. 센터장을 바라보니 센터장 역시 책상을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저는 밤 열 시에 그네로 나갔습니다. 그녀가 먼저 그네를 타고 있더군요. 그네로 다가가 그녀를 봤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여학생이었습니다. 가끔 같은 버스를 탔던 기억이 있을 뿐 한 번도 말을 나눈 기억이 없던 여학생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그네를 타며 그녀가 들고 나온 라디오로 밤의 디스크 쇼를 같이 들었습니다. 12시, 밤의 디스크 쇼가 마치고 그녀는 이야기했습니다. 학교 축제에서 내 시를 읽고, 그때부터 좋아했다 했죠. 참고로 제 고향은 인천입니다. 인천에는 섬에서 유학하러 나오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녀 역시 섬에서 유학을 왔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졸업식을 마치면 자기는 고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섬에서 집안일을 돕다 일찍 결혼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자신에게 첫사랑이었으며, 평생 나를 잊고 싶지 않다며 첫 키스를 부탁했습니다. 첫 키스는 평생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저는 그때 몰랐습니다. 아마 알았어도 그 분위기에서는 싫다고 말을 못 했겠죠. 우리는 추운 겨울날 그네에 앉아 첫 키스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라디오를 저에게 선물로 주고 떠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녀의 이름도 모릅니다. 고향이 어느 섬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흔적이라는 필명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키스는 이름 모를 그녀의 추억으로, 첫사랑의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이상 저의 첫 키스 이야기였습니다.”

주부들의 힘찬 박수 소리와 환호에 나는 거듭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센터장 역시 흐뭇했는지 연신 손뼉을 치는 모습을 봤다. 질문을 해준 주부에게 고마웠다. 강의실을 나가는 주부에게 나의 시집을 건네며 고마움을 표했다.


“질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수업 마치고 수강생 평가가 있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분위기 좋게 잘 끝났습니다. 며칠 전에 나온 제 시집인데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제 이름은…, 흔적입니다.”


나는 흔적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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