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일 만에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어머니의 고향, 양수리 한적한 곳에서 나는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 드렸다. 이제 나는 고아가 되었다. 지금껏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 살았다. 오직 어머니를 위해 공부를 했고, 어머니를 위해 밥을 먹었고, 어머니를 위해 숨을 쉬었다. 어머니 없이 하루도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부대로 복귀를 해야 했다. 부대 앞 청자 다방에 앉아 흐린 눈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초침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곁에 다가와 앉은 청자는 나의 좁은 어깨를 감싸 않으며 말했다.
“그냥 좀 울지.”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좀 울지’ 그 한마디에 나는 좁은 어깨를 들썩이며 한없이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청자는 울고 있는 나에게 가슴을 내줬다.
“우리 아기, 배가 많이 고팠구나. 그만 울고 젖 먹자.”
살이 오른 청자의 두터운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꼭지를 입에 문 순간 눈물은 사라지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아들에게 면회를 가는 아버지가 되었다. 삼십 년 전, 내가 근무했던 곳에 아들이 근무를 했다. 터미널 앞 이곳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것이 없었다. 휴가를 출발하는 군인들이 들뜬 표정으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휴가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줄이 잡힌 군복과 반짝거리는 전투화는 휴가를 나가는 군인들의 생명과 같았다. 삼십 년 전에는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터미널 옆 상패 집이었다. 여기서 군인들만 아는 공수부대 낙하산 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이등병들은 상병이나 병장으로 나름 승진을 하기도 했다. 헌병처럼 걸을 때마다 징징거리는 고무링을 바지 밑단에 끼우면 휴가 준비는 끝이 났다. 나름 군인으로서 최대한 멋을 부리고, 허세를 가슴에 달았지만 일반인들 눈에는 다 똑같은 군인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휴가 나갈 준비를 마친 군인들은 징징거리는 걸음걸이로 청자다방으로 올라갔다. 청자다방은 시외버스 터미널 바로 옆 건물 이 층에 있었다. 오전에는 휴가를 나가는 군인들이, 오후에는 복귀하는 군인들로 다방은 언제나 북적거렸다. 고향에 갈 버스를 기다리며 군인들은 커피를 마셨고, 청자는 요구르트를 소리 내며 빨았다.
삼십년이 지난 지금 구멍가게가 있었던 곳은 편의점으로, 청자다방 자리는 PC방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사장에게 옛날 이 건물 이층에 청자다방이 있었는데 하며 담배 한 갑을 샀다.
“터미널 뒤, 골목으로 들어가면 청자다방이 있어요.”
터미널 뒤, 작은 골목으로 귀신에 홀린 듯 나는 걸어 들어갔다. 녹이 슨 문을 열었을 때, 그 옛날 청자다방이 옛 모습 그대로 골목 안에 숨어 있었다. 담배 연기에 찌든 낡은 소파와 백 원을 넣으면 누구나 똑같은 오늘의 운세가 나오는 재떨이도 그대로 있었다. 살찐 금붕어가 놀고 있는 커다란 어항, 그리고 어항 구석에 내가 붙어놓았던 야광 별 스티커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야광별 스티커를 만지고 있을 때 다방 구석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두리번거리는 얼굴 보니까 딱 알겠네. 청자 언니, 손님 왔어. 나와 봐.”
거친 머릿결에 반쯤 풀린 파마, 색이 바랜 2002년 월드컵 티에 꽃무늬 몸빼바지, 그 옷에 잘 어울리는 낡은 슬리퍼를 끌면서 청자는 부엌에서 나왔다. 왼 손에 들린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면서 내 앞에 섰다. 청자가 뿜은 담배연기가 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모든 시간을 과거로 돌려났다.
“오긴 왔네. 한 삼십 년 됐나? 거기 앉아. 커피 줄게. 나도 한 잔 마신다.”
내 앞에 커피가 있고, 커피 앞에 청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눈앞이 자꾸 흐려져 끝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청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이제 내 앞에 커피가 있고, 커피를 사이에 두고 청자가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 자리 잡는 대로 바로 올게.’ 나는 청자에게 다방에서 조금만 기다리라는 약속을 삼십 년 전에 했었다.
“괜찮아. 왔으니까 됐어. 이제 그만 좀 울지? 자꾸 울면 또 젖 준다.”
청자는 색이 바랜 2002년 월드컵 티를 올려 이제는 거죽만 남은 가슴을 보이며 웃었다. 나는 거죽만 남은 그의 가슴을 소중하게 감싸 안으며 젖꼭지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청자를 힘껏 안았다.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식은 커피를 청자 곁에 두고 문을 열고 나갔다. 청자의 담배 연기가 살찐 금붕어에게 뿜어질 때 나는 어항에 비친 청자의 젖은 눈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