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었다. 1월에는 미국에서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4월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가 실험 중 사고로 폭발했다. 5월에는 민주화의 시초가 되는 인천 5·3 사태가 일어났다. 인하대에서 출발한 대학생들이 인천 문화회관 앞에서 전경들과 백골단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렸다. 피범벅이 된 여학생은 머리채를 잡혀 닭장차에 실렸고, 남학생들은 바지를 반쯤 벗은 채 엉금엉금 걸으며 닭장차에 올랐다. 거리는 지워지지 않는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고, 아스팔트는 붉게 물들어 걸을 때마다 쩍쩍 소리를 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야간자율학습 시작종이 울릴 때 나는 동수와 함께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우리는 학교 옆 공원으로 올라가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옆 오리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한여름을 보낸 오리나무 숲은 울창했다. 밖에서 보면 안이 보이지 않았다. 필통 안에 숨겨둔 하나 남은 은하수를 꺼내 오리나무 숲에서 동수와 함께 별 총총 흘려보냈다. 이곳은 동수의 형수가 알려준 그녀만의 장소였다. 형수, 나, 동수는 모두 한 동갑이었다. 형수는 덕적도 인근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열여섯에 동수 형에게 시집을 왔다. 시집와서 한동안 집 밖을 나오지 못하다 지금은 돌 지난 아들을 업고 헤헤 웃으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가끔 동수 어머니가 운영하는 중국인 거리 초입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팔기도 했다.
“방에 먼저 들어가 있어. 나는 가게에 가서 먹을 것 좀 가져올게.”
화교 학교 옆길을 따라 인천역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층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화교 골목이 있었다. 그곳은 항상 그늘져 있고 해가 떨어진 어두운 밤이면 강시라도 나올 듯 서늘했다. 이곳에서 화교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숨죽이며 살고 있었다. 동수네 집 앞에서 어깨에 멘 가방이 갑자기 무거워지며 혼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일주일 전 형수와 나는 동수 몰래 오리나무 숲에서 소주를 마셨다.
“너는 꿈이 뭐야?”
“꿈, 그딴 거 없어요?”
“나는 공부하는 너희들이 부러워. 그래도 나는 꿈이 있어. 난 미용사가 될 거야. 로열 살롱 원장님도 나에게 소질이 있다고 했어. 일 년 정도 배우면 자격증을 딸 수 있고, 가게에서 삼 년 정도 배우면 내 가게도 차릴 수 있데. 난 꼭 미용사가 될 거야.”
“형수는 좋겠어요. 꿈이 있어서.”
“주영아, 우리 친구 할래? 우리 나이도 동갑이잖아.”
“우리가 나이만 동갑이면 뭐해요? 친구의 형수인데 어떻게 친구가 돼요? 그러면 동수도 동갑이니까 친구 하자고 해보세요.”
“동수 도련님은 식구지만 너는 식구가 아니잖아. 나 너 좋아해. 우리 친구 하자.”
“됐어요. 자꾸 좋아하니 어쩌니 그러면 앞으로 형수 안 봐요.”
동수네 집 문을 살짝 열고 집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동수네 집은 긴 복도를 두고 중간중간 방이 있는 구조였다. 문에 가까운 동수 방을 지나면, 동수 어머니 방이 나오고, 부엌을 지나면 형수의 방이었다. 주춤거리며 동수의 방 앞에 섰을 때 큰 가방을 든 형수가 방에서 나왔다.
“형수, 어디 가요?”
나를 보고 당황한 형수는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 손을 잡은 형수의 손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나 지금 서울로 도망가려고….”
“왜요?”
“미용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니까 민기 아빠가 내 머리를 가위로 다 잘라 버렸어.”
모자를 벗고 보여준 형수의 머리는 쥐가 파먹은 듯한 상고머리가 되어 있었다. 얼굴에도 희미하지만, 보라색 멍 자국도 보였다. 나는 순간 화물 트럭을 운전하는 동수형의 두꺼운 손바닥이 떠올랐다.
“그럼, 민기는….”
“민기는 할머니가 있는데 잘 키워 주시겠지.”
“동수, 지금 잠깐 가게에 갔어요. 저는 형수의 꿈을 응원할게요. 형수는 꼭 멋진 미용사가 될 거예요.”
“너랑 친구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쉽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 나중에 꼭 보자.”
형수는 아기단풍이 붉게 물든 공원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형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소리쳤다.
“형수, 이름이 뭐예요?”
“금옥이, 정금옥.”
나는 길을 걷다 우연히 본 ‘정금옥 미용실’ 간판을 보며 나의 1986년 시월을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