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thank you.

by 윤희웅

나는 매일 꿈을 꾼다. 단 하루만이라도 꿈 없이 잠을 푹 잤으면 좋겠다. 어제 꿈속에서 나는 알몸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뜩 옷을 안 입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꿈을 꿨다. 말도 안 되는 꿈도 가끔 꾼다. 호랑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꿈, 킬러가 되는 꿈, 하여튼 매일 꿈을 꾸니 나만의 비결도 생겼다. 꿈을 1부, 2부로 연결해서 꿀 수도 있고, 꿈이 마음에 안 들면 중간에 다른 꿈으로 바꿀 수도 있다. 운전면허 시험에 매번 떨어졌을 때였다. 그때 꿈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고급 승용차의 키를 형과 동생에게 주고 나만 안 줬다. 아버지에게 나는 왜 안 주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너는 면허증이 없어 주고 싶어도 못 준다고 했다. 면허시험에서 자꾸 떨어지는 것도 억울한데 꿈속에서 아버지가 나타나 나를 놀리고 갔다. 꿈 이야기하면 로또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호랑이 꿈을 꾸고 로또를 샀다. 물론 꽝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대통령이 서 있었다. 로또를 샀다. 물론 꽝이었다. 황소 6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6마리라니, 6은 로또의 숫자가 아닌가? 로또 명당만 찾아 가 로또를 십만 원이나 샀으나 결론은 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제 꾼 꿈은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는 로또 1등 꿈이었다. 아버지가 나타나 번호를 불러줬다. 나는 꿈속에서 번호를 달달 외우기도 했다. 순간 사라지는 아버지를 향해 나는 '어디서 사야 해요?’라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뒤돌아보며 '시청 앞'이라 말했다. 문제는 내가 사는 동네에는 시청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말한 시청은 어디일까? 우리나라 전국 (대한민국) 시군구를 보면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9개의 도 (특별자치도 포함), 1개의 특별자치시, 77개의 시가 있다. 그 많은 시청 앞을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중 어디일까? 고민 끝에 나는 결정했다. 시청 앞이면 서울시청이다. 서울시청 정도 돼야 로또 1등이 나올 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 결과 서울시청 앞에 로또 명당도 있었다. 나는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시청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일 서울 간다. 그렇게 알고 있어.”

“서울은 왜? 대학 송년회 가는 거지, 그럼 나도 같이 가.”

“송년회는 무슨, 그냥 금방 다녀올 거야.”
“송년회 참석하라고 계속 연락이 온단 말이야. 이번 송년회는 김 교수님 사은회까지 같이 하는 거라 무조건, 반드시 참석이래. 김 교수님은 당신 논문도 봐줬잖아.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시청 앞에 호텔도 잡아 주고, 우리는 부부니까 방을 따로 하나 준다고 했어. 같이 가자.”

“시청 앞이라고?”

“그래, 나는 당신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못 간다고 말은 했는데 내일 서울 갈 거면 송년회도 참석하자. 오랜만에 애들도 보고, 호텔에서 자고, 일요일에 내려오자.”


서울시청이라고 마음을 정했지만 6개 광역시청까지 돌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송년회와 서울시청 앞 호텔까지 빼도 박도 못하였다. 그래, 아버지 역시 서울 사람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말한 곳은 서울시청이 맞다.


“나도 연락은 받았는데, 갈까 말까 고민했지. 그래 가자. 우리 서울 가는 거야.”


모처럼 서울 나들이라 마음이 살짝 들뜨기도 했지만 사실 로또 1등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요즘 1등이면 이십억 정도 되니까 세금 제하고도 십오억이다. 일단 집부터 하나 사고, 10년이나 탄 똥차는 폐차하고, 요즘 새로 나온 차로 하나 사야겠다. 순간 아내에게 1등 소식을 알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알면 집안 식구들도 다 알게 될 텐데 모른척할 수도 없고, 만약에 아내가 반반 나누자고 하면 어쩌지? 회사나 친구들이 연락이 오면 어쩌지? 술 한잔 사는 거야 문제가 아닌데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안 빌려줄 수도 없고 피곤해지는데. 그러고 보니 로또 1등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로 갔다. 시청 앞 호텔에 짐을 풀고 나는 로또를 사러 갔다. 시청 근처 로또 판매점이 열 곳이나 됐다. 나는 열 곳을 모두 돌아다니며 십만 원이나 로또를 샀다. 외운 로또 번호와 혹시 하는 마음에 자동으로 산 금액이었다. 당첨된다면 이십억, 아니 오십억도 가능할 것 같았다. 된다면 이 아니라 무조건 당첨이니 나는 내일 아침이면 벼락부자가 된다. 저녁에 술을 많이 먹으면 혹시 로또를 분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텔로 돌아와 가방 깊숙이 로또를 숨겼다.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아 조금은 불안했지만, 오늘 저녁 술이 나는 더 불안했다.


“교수님, 은퇴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네 보고 싶었는데 와 주니 정말 고맙네. 지방에서 생활은 할 만한가? 아이는?”

“왜 그렇게 지방으로 내려가기 싫어했는지 부끄럽습니다. 다 서울 생활의 허세였죠. 지방생활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노력하는데 쉽지 않네요. 올해까지 안 생기면 과학의 도움을 받아 볼 생각입니다.”

“지방 생활에 만족하니 보기 좋네. 나 역시 고향으로 내려가서 말년을 보내려고 하네. 자네 지역하고 가까우니 우리 자주 보세.”

“영광입니다. 제가 맛있는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숙취에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가방부터 뒤졌다. 어제 산 로또와 휴대전화 그리고 볼펜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결코 로또 1등을 아내에게 알리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가정의 평화를 깨는 오해는 말아주시길 바란다. 단지 로또를 십만 원이나 샀다는 죄의식이었다. 아무튼 변기에 걸터앉아 어제 산 로또를 한 장씩 꺼내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었다. 로또 스무 장을 확인하는데, 오 분도 안 걸렸다. 이번에는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며 볼펜으로 표시했다. 이만 오천 원, 오천 원 다섯 장이었다. 나는 한동안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아버지가 또 장난을 쳤다. 생전에 그렇게 장난을 좋아하시더니 이제 꿈속에 나타나 장난이라니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나에게 로또 1등이 말이 되니? 십만 원어치 고기를 사 먹을 걸 괜한 짓을 했다. 집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맥주를 홀짝이며 다시는 로또를 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로또 사건이 있은 지 두어 달이 지났다. 아내한테서 일찍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가 놓여있었다. 아내는 말없이 케이크를 바라봤다. 아내가 바라본 케이크에는 초음파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봤다. 아내의 뱃속에 자리 잡은 작은 생명이 나를 보며 ‘아빠’ 하며 방긋 웃고 있었다. 나는 진정 그렇게 보였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우리는 한동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심으로 축하해. 그런데 언제야?”

“계산해 보니까 서울 송년회 때, 시청 앞 호텔 같아. 출산예정일은 9월 18일쯤.”


나는 시청 앞이라는 이야기와 출산예정일이 9월 18일이라는 숫자는 아버지가 꿈속에서 알려준 번호와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로또를 점지해 주신 것이었다. 아버지, thank you.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키우겠습니다.


“우리 아이 태명은 뭐로 할까?”

“당연히 로또지.”

keyword
이전 07화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