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 꿈일지도 몰라. 여보, 이리 와서 내 볼이라도 한번 꼬집어 줄래?”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처럼 달려와 그의 볼을 힘껏 꼬집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볼이 부족하다면 아낌없이 등짝 스매싱이라도 날려주겠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녀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손이 허공을 가르며 그의 등짝을 가격했다. 그는 짧은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전생에 붕어였나 봐. 당신 손이 맵다는 것을 가끔 잊는단 말이야. 아무튼 내가 방금 이상한 일을 겪었어. 무섭다고 해야 하나, 섬뜩했다고 해야 하나 도무지 모르겠어.”
그는 손도 닿지 않는 등을 연신 비벼가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우물거리는 입술을 바라보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어려워하지 말고, 처음부터 이야기해 봐. 내가 다 들어줄게.”
“오늘 아침 먹고 내가 광덕산에 갔잖아. 알지?”
“삐지지 말고 잘 들어. 당신은 이상한 말버릇이 하나 있어. 이야기 도중에 쓸데없이 질문을 해. 글쎄, 추임새 같다고 할까? 아무튼 당신이 이야기 도중에 질문을 하다 내가 대답하면 당신이 처음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사라지고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지. 그러니까 당신은 질문을 하지 말고 이야기를 끝까지 해. 안 그러면 당신 이야기는 또다시 삼천포로 빠진다. 알았지?”
“알았어. 질문 없이 이야기를 계속할게. 요즘 내가 곰이 겨울잠을 자듯 먹고, 자고만 했잖아? 아, 이건 질문이 아니야. 미안, 계속할게. 봄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알록달록 꽃도 피고 그래서 아침을 먹고 광덕산에 갔어. 광덕산이 높지는 않아도 넓잖아. 산 중턱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면 2km쯤 되지. 나는 항상 광덕산을 예절관 앞을 지나서 올라가. 당신도 알지? 아, 이것도 질문이 아니야. 이야기 계속할게. 내가 오르막을 몇 번 나눠서 힘겹게 중턱까지 올랐어. 이제 둘레길을 돌면 되는데 거기에 한 아주머니가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 거야. 아무리 광덕산이 높지 않은 동네 산이라도 차림새가 영 이상했어. 어디 계 모임이라도 갈 것 같은 차림새였지. 그래도 운동화 비슷한 걸 신고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어. 아무튼 그 아주머니를 빤히 쳐다보니까 그 아주머니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야. 그래서 물어봤지.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면 뭐 잊어버렸어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는 거야. 별말이 없길래 나는 그냥 길을 걸으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이야기했어.”
“공원묘지를 가려고 하는데 길 좀 알려 주실래요?”
“공원묘지는 왼쪽 길로 한 십 분 정도 걸으시면 나와요. 아니 그 길 말고, 이 길로 가시면 됩니다. 그러지 마시고 따라오세요. 광덕산은 처음이신가 봐요?”
“처음인데 참 좋네요.”
“광덕산이 좋아요. 두 바퀴 정도 걸으면 한 시간 더 걸리거든요. 그런데 공원묘지는 왜?”
“거기가 집이에요.”
“공원묘지가 집이요? 그럼, 저 혹시 귀신이세요?”
“귀신을 믿으세요?”
“사실 사람이 무섭지 있지도 않은 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있어요?”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없죠.”
“있을 텐데, 잘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귀신을 본 적이 없어요. 다 왔네요. 여기 계단으로 내려가시면 공원묘지예요.”
“공원묘지 수목장은 어디예요?”
“공원묘지 수목장은 따로 조성되지는 않고,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울타리 너머 나무를 보면 명패가 있잖아요. 여기가 수목장 아닐까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왔습니다. 심심하시면 저희 집구경 가실래요?”
“아니요. 제가 보기보다 겁이 많아서요. 그럼 안녕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았지. 물 한잔 먹고 다시 한 바퀴를 돌다 공원묘지에 왔을 때였어. 울타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 낮은 울음소리도 들리고해서 사실 조금 무서웠어. 멀리서 조심스럽게 둘러보는데 아들인 듯 어린 학생이 영정사진을 들고 있었지.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는 않았는데 영정사진 속 사람은 분명 여자였어. 그러다 조금 전 아주머니가 생각났어. 설마 그 아주머니가 말한 집이 거기였을까? 귀신을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잘 생각해 보라는 말도 무섭고, 순간 소름이 짝 올라오면서 걷지를 못하겠어. 엉거주춤 그곳을 벗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내려온 거야. 여보, 무섭지? 섬뜩하지? 정말 내가 귀신을 본 걸까?”
그는 지금도 닭살이 돋았다며 그녀에게 닭살이 올라온 팔을 보여줬다. 그녀는 그를 말없이 지긋이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내가 누구로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