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티아고

by 윤희웅


섬티아고(신안 12 사도 순례길)를 걷기로 마음먹고 목포에 있는 호텔을 예약한 날은 4월 초였다. 4월 30일은 일요일, 5월 1일은 노동절, 5월 2일은 회사 창립일이었다. 모처럼 연휴를 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싶었다. 섬티아고,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생각할수록 놀라웠다. 작은 섬들을 노둣길로 연결하고, 한두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두 평 크기의 교회를 섬 곳곳에 숨겨 놓았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들어가지 못하는 교회, 물 위에 떠있어 아예 들어갈 수도 없는 교회, 고양이가 수문장처럼 교회를 지키고, 물고기 형상을 한 교회는 비늘을 반짝이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10명의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이라 했다. 나는 걷기 좋은 오월을 기다리며 작년 겨울을 보냈다. 기다리던 연휴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30년 7개월 7일을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를 했다.


"아빠, 회사 그만뒀다."


아들은 밥을 먹다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들은 이유도 묻지 않고 화를 내며 성질을 부렸다. 몇 년만 더 다니면 정년인데 그새를 못 참고 그만뒀다며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섭섭했다. 24살부터 30년을 넘게 다녔는데도 아들에게 욕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앞으로 뭐 할 거야?"

"30년을 일했는데 무슨 일을 또 해? 그냥 책이나 읽으며, 글이나 써야지."


아들은 벌떡 일어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아들에게 나는 커다란 짐이 되어버렸다.


"걱정 마, 너에게 짐 될 일 없으니까, 혹여 그럴 일이 생기면 조용히 사라져 줄게."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다 늦은 저녁에 집을 나섰다. 아침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또다시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겨버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로 들어갔다. 트렁크에서 곰팡이 냄새가 폴폴 피어나는 담요를 꺼내 덮고 누웠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인생 참 힘들다. 참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수원 밑에 오산이었네. 한심했다. 그때 카카오 톡이 울렸다. 늦은 시간에 누가 카톡을 보냈을까?


- 아빠, 화내서 죄송합니다. 내 말에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요. 아빠가 왜 퇴사를 했는지 묻지 않아도 알아요. 아빠는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잖아. 그래서 화가 났어요. 말하는 내가 더 속상했다는 것만 알아줘요. 요즘 내가 신고받고 출동해 보면 돈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괄시받고, 힘들게 사는지 보는 내가 더 가슴이 아팠었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그래서 욱했던 것 같아요. 어쩌다 퇴사 기념 여행이 됐네요. 용돈 보냈으니까 맛있는 거 사 드세요. 잘 다녀오세요.-



송곡항에서 두 번째 배(9시 30분)로 소악도로 들어갔다. 30분 정도 배를 타고 내렸다. 매표소 직원이 물 때를 확인하며, 소악도에서 대기점도까지 역으로 걷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제부터 12번 가롯유다의 교회를 시작으로 11번 시몬의 교회와 10번 유다의 교회 순으로 역으로 걸어야 했다. 높지 않은 산도 넘었고, 갯벌도 지나야 했다. 이곳으로 내려와 작은 카페나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두 시간쯤 걸었을까? 작은 매점이 나타났다. 매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가방 속에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봤다. 내가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전화와 문자가 많이 와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문자들이었다. 문자를 읽던 중 이름 없이 번호만 있는 문자가 있었다.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나와 친하지 않거나, 모르는 사람일 텐데 하며 문자를 읽었다.


-저 김광수입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윤희웅 씨 반대쪽에 항상 서있었지만, 제가 인정하는 유일한 위원장이었습니다. 윤희웅 씨가 제일 멋있었고, 제일 잘했습니다. 그때가 좋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요즘 제가 잘못 살았나 후회가 많았습니다. 문자 덕분에 좋은 기운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광수님도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커피도 다 마셨으니 이제 다시 걸어야겠다. 아직 반이나 남았다.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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