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고독했다.

by 윤희웅

"오빠, 불 좀 빌려줄래?"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유흥가가 밀집된 건물과 건물사이 좁은 골목길에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그녀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나를 불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제 손짓을 하며 나를 부른다. 나는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오빠, 내가 가슴 보여줄게."


그녀는 바바리맨처럼 롱패딩을 펼쳤다. 롱패딩에 숨겨진 그녀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이었다.


"만져도 돼."


그녀는 가슴을 만져보라며 눈으로 재차 이야기했다.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에 나는 머뭇거렸다. 그녀는 돌아서려는 나를 잡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괜찮아. 만져도 돼."

"정말, 만져도 돼요?"

"괜찮아. 만져 봐."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간지럽게 만지지 말고 두 손으로 꽉 만져봐. 빨고 싶으면 빨아도 돼."


나는 그녀의 가슴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녀의 가슴을 만지는 순간 정신이 혼미했다. 잠깐 비틀거린 것도 같다. 그녀는 나에게 가슴을 내주며 짧지만 여운이 강한 얕은 신음소리를 냈다.


"오빠, 나랑 술 한잔 할래?"

"어디서요?"

"나, 이 건물 지하 주점에서 일해, 우리 가게로 가자."

"죄송하지만 저 돈이 없어요."

"오빠, 이 새끼 다 만지고 돈이 없다고 하네."


오빠 소리에 어디선가 건장한 남자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를 벽에 몰아놓고 멱살을 잡았다.


"아저씨가 세상물정을 모르시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가슴을 만졌으면 책임져야지. 그러지 말고 술 한 잔 먹고 가. 싸게 줄게."

"진짜 돈이 없어요."

"카드 있잖아."

"카드 없는데요."

"지갑 줘봐."


나는 그들에게 지갑을 보여줬다. 지갑 안에는 교통카드와 삼만 이천 원이 들어 있었다.


"이런, 거지새끼가 닭 잡아먹고 오리발이네. 너 좀 맞아야겠다."


나는 뺨을 한 대 맞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길게 뿜었다.


"오빠, 나 알아?"

"문화빌라."

"에이 18, 오빠, 저 새끼 보내 줘. 동네 사람이야."


나는 부어오른 뺨을 비비며 골목길을 벗어났다. 골목길 끝에서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에게 빨리 가라고 손짓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만질 때 얼굴을 봤다. 그러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녀가 맞았다. 우리 집 창가에 서면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 길을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마음껏 소비했다. 가끔 동틀 무렵 비틀거리며 공원으로 올라가는 롱패딩을 입은 여자를 봤다. 공원을 비추는 가로등에 얼굴 윤곽이 보였다. 오늘도 그녀는 비틀거리며 공원을 올라가고 있었다. 창가를 바라보며 앉아있던 나는 롱패딩을 입고 문을 나섰다.




나는 고독했다. 나의 고독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됐다. 배척당하고, 혐오에 지쳐서 나는 스스로 고독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쉽게 익숙해진다. 어느새 나 역시 내가 만든 고독에 익숙해졌다. 나는 하루종일 창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어둠이 밀려오고 자정이 다가오면 나는 외출을 준비했다. 모두가 잠든 길거리를 걸으며 깨어있는 고독한 사람들을 찾으려 다녔다. 고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냄새가 있었다. 오래된 장롱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프탈렌 냄새. 십여 년 전, 일본의 작은 선술집에 간 적이 있었다. 호텔 뒷골목을 걷다 불이 켜진 주점의 등불을 보고 들어갔다. 주방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의 테이블에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찐 땅콩과 샤케를 마시는 그들에게서 진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나는 나프탈렌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다. 그 냄새를 맡으면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 고독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지독한 고독에 지쳐 본인이 고독하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고독한 사람을 끝내 찾고 말았다. 나에게 가슴을 내준 그녀, 그녀는 분명 고독한 여자였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그녀를 보고 나는 따라 올라갔다.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있는 그녀를 공원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롱패딩을 벗고 속옷차림으로 나무를 껴안고 있었다. 나는 조금 멀리서 그녀를 지켜봤다. 가끔씩 가쁜 숨소리도 들리기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롱패딩을 입고 멀리서 지켜보는 나를 불렀다.


"오빠, 그때 문화빌라지?"

" 네."

"공원 올라올 때 항상 불 켜진 창문에 앉아있는 사람이 오빠지."

"네."

"왜 따라왔어?"

"고독해 보여서요."

"오빠도 고독해? 그럼 나처럼 해봐."


나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그녀처럼 나무를 껴안았다. 나무는 나에게 그동안 살아온 삶과 환경에 대해서 아낌없이 이야기해 줬다. 나무의 거친 표면에 몸을 비빌수록 나무의 목소리는 더 명료하게 들렸다. '그동안 수고했어'라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울고 있는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그때처럼 가슴을 내줬다.


"오빠,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섰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이 어색했지만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 가는 발걸음에 전에 없던 힘이 들어갔다. 빌라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을 때 경찰차가 내 옆을 스쳐 공원으로 올라갔다. 나는 경찰차가 올라간 공원을 향해 뛰어갔다. 공원 안 그녀가 좋아했던 나무 밑에 롱패딩을 머리까지 쓰고 누워있는 그녀를 봤다. 누군가는 강간이라고, 누군가는 자살이라고, 누군가는... 경찰이 접근금지 라인을 치며 나를 밀어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잘 다려진 정장을 벗고 그동안 입었던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나온 바지를 입고 소파에 앉았다. 나는 다시 고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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