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맛깔나게 읽는 법

by 윤희웅

무라카미 하루키, 단지 이름만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다. 하루키 소설을 맛깔나게 읽는 법은 일단 잠자기 전 침대에서 읽으면 안 된다. 단언컨대 다음 날 일상에 지장을 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볕 좋은 창가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재즈와 함께 읽어야 한다. 스툴이 있다면 다리를 올려놓고 편안하게 읽으면 더욱 좋다. 나는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고 있다. 책의 뒤, 부록에는 친절하게 책에 나온 재즈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국경의 남쪽’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냇 킹 콜의 프리틴들을 들었다. 책을 읽으며 잠시 쉴 때 나는 어김없이 그녀를 생각했다.


나에게는 십오 년을 함께 한 연인이 있었다. 굳이 결혼이라는 틀 속에 우리의 관계를 묶지 않았지만 나는 영원히 함께할 연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헤어지자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연락을 안 할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순수함과 따스함이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면 나는 그녀의 얼굴 속에서 확실하게 ‘나를 위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것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렬한 흡인력이었다. 하지만 십오 년의 세월이라는 것은 사람을 다양한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모든 것이 점점 사라져 갔다. 어떤 것은 끊어져 버리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떤 것은 시간을 두고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사막뿐이었다. 나는 사막을 견딜 힘이 없었다. 하긴 내가 사는 이곳도 사막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곳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며, 그의 젊은 시절(1992년)의 작품이었다. 상실의 시대의 완결 편이란 평가를 받은 작품이었다. 실연의 상처를 받은 연인들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국경의 남쪽에는 희망이 있다면 태양의 서쪽에는 죽음이 있었다. 그녀와 연락을 안 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시베리아 농부처럼 내 안의 무엇인 건가, 죽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땅바닥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서쪽을 향해 걸었다. 태양의 서쪽을 향해.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이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해서 걷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 죽고 말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화가 난 이유는 그녀가 나를 믿지 못한다고 느껴서였다. 나는 변함이 없는데 왜 그녀는 나를 믿지 못한다고 할까?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와 함께했던 선명한 기억은 내게 잠들지 못하는 밤을 안겨 주었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녀는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거기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녀를 영영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내 인생은 다시 한번 상실되고 말았다.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당신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이야. 그래서 불안해.”


내 속에는 늘 똑같은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은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가져다주었지.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갈증 때문에 괴로워했고,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괴로워할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 결핍 그 자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았다. 이제 알았다. 나는 당신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나 자신도 상처받고, 정말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 사막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사막이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결말을 몇 번이나 수정했다고 했다. 부인의 충고, 관계자의 충고를 들으며 수정에 수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소설에서 흔하지 않은 결말을 지었다. 그의 전작인 노르웨이의 숲에는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숲 속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함정들이 있었다. 한번 빠지면 누군가 와서 끌어올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깊은 우물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고독과 실연과 상처와 사막을 이야기했다. 나의 존재만으로도 상처가 되는 사막에서 남에게 덜 상처를 주고, 나의 상처도 덜어질 수 있는 걸까? 하루키의 문학은 이런 주제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결핍이란 채우려고 서둘수록 더 멀어지는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다. 신기루의 실체는 아무것도 아닌 태양의 서쪽이요, 텅 빈 사막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신기루였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다 읽었을 때 태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나는 태양의 서쪽을 향해 걸어야겠다.


*굵은 글씨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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