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이상하다. 아니 변했다. 주말이면 소파에서 벗어나지 않던 남자가 얼마 전부터 새벽에 일어나 등산을 간다. 사십 대 중년 남자가 주말에 등산을 가는 일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입었던 등산복에서 땀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어디를 갔다 온 것일까? 얼마 전 경희 엄마가 주말에 등산을 가는 여자들 이야기를 했다. 요즘 등산은 운동이 아니라 중년 남녀의 만남의 장소라 했다. 등산 코스마다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막걸리를 권하거나, 오이, 참외 등을 권하면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는다고 했다. 만남을 목적으로 산에 오르는 여자를 산토끼라고 부르고, 당연히 남자는 산토끼 사냥꾼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준다거나, 생뚱맞게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을 물어보며 작업을 건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만의 은어가 있다고 했다. 한쪽 바지를 걷고 등산하면 애인을 찾는다는 신호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닉네임을 부르며 소통한다고 했다. 관악산이 중년 남자의 홍대며, 서로 엉덩이를 밀어주고, 손을 잡아주니 본인 같아도 가슴이 벌렁거리겠다며 같이 등산을 가자고 했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맞으면 등산은 뒷전이 되고, 그들은 노래방으로, 술집으로, 아니면 모텔로 간다고 했다. 어제, 그의 휴대전화에서 우연히 본 문자가 마음에 걸렸다.
‘궁민연금, 나름전설이다, 곰탕재료푸우, 건들면피봐 내일 잼잼 8시. 늦으면 퇴출.’
그는 내일도 관악산으로 등산을 간다. 같이 가자는 말에 정색하며 아이는 누가 보냐며 성질을 냈다. 아이도 같이 가면 된다는 말에, 산이 험해서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과 계속 카톡을 했다. 방 안에서 들리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구랑 카톡 하는 거야? 여자지?”
“여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남자야.”
“줘봐. 내가 확인해야겠어.”
“사생활이야.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몰래 훔쳐보면, 분명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거야.”
“당신 여자 생긴 거야. 그래서 안 보여주는 거지. 내 말이 맞지?”
“상상은 자유야. 그런데 요즘 당신 성장기야?”
“무슨 소리야? 내 나이가 몇인데 성장기야?”
“그런데 하루하루 옆으로 성장을 하네. 그러다 굴러다니겠어.”
“여자가 나이 먹으면 다 그렇게 돼. 알아?”
“나이만 먹었겠니? 다른 것도 먹었겠지.”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러 나간 그를 바라보며 나는 굳게 다짐했다. 나도 반드시 살을 빼고, 등산을 간다. 옆집 경희 엄마와 딱 달라붙는 살색 레깅스 입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등산을 갈 것이다. 식탁 위에 아이가 먹다 남은 빵이 너저분했다. 나는 식탁을 청소하며, 아이가 먹다 남긴 빵을 먹었다. 레깅스를 입으려면 살을 빼야 하는데 이상하게 빵이 점점 맛있다. 입에 하나 더 물고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거실에 같이 앉아 있을 때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누구지 하는 표정이었다.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잡았다. 여자의 확실한 느낌이 왔다. 등산 중에 번호를 교환한 여자일 것이다. 아니면 내 장을 지지리라.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받아.”
“왜?”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나 태권도 상비군 출신이야. 힘쓰게 하지 마라.”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벌떡 일어선 나를 바라봤다. 이내 엉거주춤 소파에 다시 앉았다.
“쉰 소리 그만하고 스피커 폰으로 받아.”
“사생활이야. 그러는 거 아니야.”
나는 기합까지 지르며 발차기 자세를 취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전화기를 내려놓고, 떨리는 손으로 스피커 폰으로 전환했다.
“사장님, 저 정숙이예요.”
나는 정숙이라는 말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돌려차기 했다. 몸이 아무리 옆으로 성장했어도, 몸은 정직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몸을 살짝 기울여서 90도 정도 돌며 무릎을 접었다가 힘껏 피며 발등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소파에 쓰러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합과 함께 다음 동작을 준비했다.
“사모님은 전화를 안 받으셔서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어요. 필터 교체 주기가 많이 지났었어요. 언제 방문하면 될까요?”
정숙이가 아니라 정수기였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그가 일어나 더 이상 맞고는 못 살겠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오늘은 오해가 있었지만, 그동안 수상했던 모든 일이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사과했다. 그는 불륜, 애인이라는 단어에 어이없어하며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동안 등산이 아닌 게임을 했다. 나이 사십 넘어서 게임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나에게 등산을 간다고 속였던 것이었다. 등산이 아니라 게임이라... 다행이다. 당분간 다이어트는 안 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