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그는 가슴이 답답했다. 가슴이 반복적으로 조여오며 숨이 막혔다. 빈주먹으로 가슴을 쳐보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시계를 올려봤다. 한 시간 정도 잠든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잠을 자지 못했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을 뿐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는 이제 침대에 걸터앉아 가슴을 치며, 소리 내어 꺽꺽 울었다. 그의 슬픔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돌이켜보면 그의 슬픔은 언제나 상실이었다. 그는 일곱 살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 점점 식어가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으며, 점점 굳어가는 할아버지의 다리를 조막손으로 힘껏 주물렀다. 그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상실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으로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실. 그는 그 이후 할머니의 죽음과 부모의 죽음, 언제나 함께일 것 같았던 형제의 죽음을 목격했다. 모두 비슷비슷한 암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생각보다 깊었다.
어제 오후, 그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별일 아니라는 듯, 그냥 길을 걷다 넘어져 무릎에 작은 생채기가 난 듯 그의 딸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빠, 얼마 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어. 그때 갑상샘에 혹이 보여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오늘 결과가 나왔어. 7.8mm 갑상샘암 이래. 림프샘에 걸쳐 있어서 바로 수술해야 한다는데 어쩌지?”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엄마도, 할머니도 모두 갑상샘암이었다. 남들은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준다는데 그는 유산은 커녕 유전을 넘겨준 셈이었다.
“확실해? 서른도 안 된 애가 무슨 암이야?”
“아빠 딸, 서른둘이거든. 딸 나이도 몰라?”
“일단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받자. 내가 지금 갈게.”
“아니야. 아빠는 일해. 내가 알아서 준비하고, 나중에 전화할게.”
그날 저녁, 그는 딸과 저녁을 함께했다. 조용한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직장 문제로 분가한 지 오래된 딸은 모처럼의 아빠와 함께하는 저녁이 그리웠나 보다. 조금은 흥분한 듯 메뉴를 고르고,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오랜만에 딸의 웃는 얼굴을 보며 밥을 먹었다. 잘 구워진 고기를 딸의 앞접시에 올리며 그는 말을 했다.
“미안하다.”
“아빠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 것 다 알잖아. 뭐가 미안해? 생각보다 일찍 오긴 했는데, 매도 일찍 맞는 게 낫겠지. 갑상샘암은 착한 암 이래. 아빠도 잘 알잖아.”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에 있니? 쉬운 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암은 암이야. 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 줄 몰라?”
“알아, 알아서 그러는 거야.”
“어떻게 수술받을 생각이니?”
“그래야겠지. 일단 한 번 더 검사받아보고 결정할게.”
“수술 자국이 목에 선명하게 남던데, 성형수술이 되려나?”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데 그래도 목에 때가 낀 것처럼 조금은 남더라.”
“목에 때 정도면 넌 늘 있던 거니까 티는 안 나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는 딸에게 여유 있게 웃으며 말하고 싶었다. 그까짓 거 별것 아니라는 식의 용기와 잘될 거라는 위로를 담아서 말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말이 빙빙 돌 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술을 마셨다. 안주로 집은 고기를 딸의 앞접시에 올렸다. 그의 근심 어린 표정이 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빠, 밥 다 먹고, 사진 찍으러 가자. 요즘 인생 네 컷이라고 우리 또래들에게는 아주 유행이야.”
“스마트 폰으로 사진 찍으면 되는 걸 굳이 돈 주고 사진을 찍어?”
“옛날에는 대부분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잖아. 옷도 맞춰 입고, 화장도 하고, 머리도 했지. 그리고 처음 보는 커다란 사진기 앞에서 어색하게 웃어야 했어. 말 그대로 사진 찍기가 어색하고, 힘들었지. 하지만 잘 나온 사진은 남았어. 그럼 스마트 폰은 어떨까? 스마트 폰은 그냥 쉽지. 손 가고, 마음 가는 대로 찍고 지우면 그만이잖아. 하지만 요즘 뜨는 인생 네 컷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이라고 할까? 스마트 폰처럼 손쉽게 사진도 찍고, 아날로그처럼 뽑아서 간직도 할 수 있지. 그리고 우리 세대는 스티커 사진 세대라 인생 네 컷이 낯설지도 않아. 아무튼 아빠와 딸이 신나게 웃으면서 사진 찍는 거야. 싫다고 하지 마. 앞으로 아빠하고 같이 내가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장담컨대 오늘 아니면 앞으로 없을 것 같은데….”
그는 썩 내키지 않았다. 수술을 앞둔 딸하고 웃으며 사진 찍기가, 아니 웃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싫었다. 하지만 딸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 아니면 언제….’ 그는 못 이기는 척 딸에게 손목이 잡혀 사진관으로 들어갔다.
“아빠, 인생 네 컷에는 심오한 뜻이 있어. 그냥 예쁜척하며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야 해. 아빠와 나의 희로애락 인생에서 우리에게는 앞으로 낙만 남았다. 알았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커플 머리띠 하자.”
그는 딸과 함께 커플 머리띠를 하고 딸의 희로애락 구령에 맞춰 사진 찍는 연습도 했다. 그리고 인생 네 컷 사진을 찍었다. 몇 번의 실패와 다시 찍기를 하며 그는 딸과 함께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언제 웃어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그였다. 그에게 십 분의 사진 찍기는 두 시간의 저녁보다 더 값진 시간이 되었다. 그를 집 앞에 내려준 딸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이야기했다.
“아빠, 졸지 마. 나 괜찮아.”
“그래, 너도 쫄지 마. 그리고 고 맙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