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네 어른들이 좀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실없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간혹 ‘쓸개 빠진 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에게 ‘쓸개 빠진 놈’이라는 표현을 하게 된 것은 노루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쓸개는 간 아래쪽에 붙어 있는 주머니로,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을 농축하고 저장하는 일을 한다. 인터넷에서 쓸개 이미지를 찾아보면 마치 채소 중에 보라색 가지처럼 생겼다. 쓸개는 담낭이라고도 불리는데 길이는 약 7~10cm 정도 되는 손가락 크기만 한 작은 신체 장기다.[1]
담낭이 저장하고 있던 담즙은 간에서 생성되고 십이지장으로 유입되어 소화효소인 리파아제(lipase)의 작용을 촉진시킨다. 그 결과로 생긴 지방산을 용해시켜 주고 장에서 흡수를 용이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이 말은 쉽게 말해서 소화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2] 결국 동네 어른들이 ‘쓸개 빠진 놈’이라고 말씀하신 표현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어떤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석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동물 중에도 쓸개 빠진 녀석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동물이 앞에서 소개한 노루이다. 나는 노루에 쓸개가 없다는 말을 어릴 적에 들었다. 그러나 그 시절엔 내가 노루를 잡아서 직접 해부해 볼 수 없었기에 그 진위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기억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묻어 두고 잊고 살았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좋아졌다. 인터넷 검색을 몇 번만 해 봐도 내가 원하는 정보는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옛날의 궁금증을 검색하던 중 노루에 쓸개가 없다는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내 손에 피 한 방울도 묻히지 않고 말이다. 그러나 노루에게 쓸개가 없어도 되는 이유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추가 정보는 찾지 않았다. 다만, 내 생각에 노루는 쓸개가 없어도 잘 먹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신이 쓸개를 만들어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참고로 노루는 사람을 보고 크게 겁을 먹지 않는다. 그러다 사람이 바로 자신의 코 앞까지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제야 화들짝 놀라서 도망친다. 아무튼 노루가 쓸개가 없어서 놀라지 않는 것인지, 시력이 안 좋아서 사람을 못 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와 반대로 사람은 쓸개도 있는데 겁을 잘 먹는다. 특히 큰 실패가 찾아오면 화들짝 놀라서 주저앉는다. 갑자기 찾아온 실패 때문에 두 다리에 힘이 확 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실패는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실패가 반갑지 않기 때문에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고, 알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싫어하는 실패를 만난 사람들의 머릿속은 찰나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백지화가 된다. 이때 그동안 느껴왔던 성취감들도 함께 사라진다.
레고(LEGO)는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이다. 레고는 테마가 있는 블록 조립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레고 박스에는 사용 가능 연령이 표기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이에 따른 난이도를 구별해 둔 것 같다. 예전의 레고는 미취학 어린이가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요즘엔 2살짜리 아기가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있고, 10세 이상의 초등학교 어린이가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게다가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즐기라고(사실은 레고 회사가 돈을 많이 벌려고) 성인용 레고도 출시한다.
레고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사람들이 만들 레고의 결과는 조립하기 전부터 알 수 있다. 레고 박스에 완성 후 이미지가 멋지게 인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완성된 이미지처럼 레고 블록을 조립하면 된다. 사람들은 블록을 조립하고 다시 해체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호기심을 느끼고, 창의력이 발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성된 후에 느끼는 성취감은 레고의 최대 장점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성취감을 가지고 있다. 여자가 임신을 하려면 남자의 정자가 필요하다. 특히 임신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정자는 매달 한 번, 보통 하나씩 배란되는 난자를 만나야 하는데 이때 대기 중인 정자의 숫자는 무려 약 1~2억 마리이며, 가장 운이 좋은 정자 하나가 난자를 만나서 임신에 성공하고, 결국 사람이 되는 것이다.[3] (물론, 쌍둥이들로 태어나는 경우는 운 좋은 녀석들이 여럿이다.)
생각해 보라. 이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느끼는 성취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이 신비로운 결과가 사람이 인정해야 하는 첫 번째 성취감이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는 세포 특성상 그 성취감을 느낄 수 없어 임신한 부부들이 그 성취감을 대신 느끼고 기뻐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협력해서 사람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막 태어난 갓난아기조차도 말은 못 하지만 배고프면 울어 댄다. 그러나 엄마가 챙겨 주는 맛있는 밥(젖)을 먹고 나면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아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원하는 욕구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아기는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성취감을 얻게 된다. 비록 내가 아기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추론해서 말해 주는 것이지만, 이 주장에 반대할 의사나 과학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이 성장하면서 슬슬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초, 중, 고 학생이 되면 공부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부딪친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난 성취감을 통해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바쁜 일상은 한 마디로 최악이고, 만약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우울한 맛이나 무기력한 맛을 보며 사는 인생이 될 것이다.
나는 좋은 것을 잃거나 손해 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신(GOD)께 기도를 드려서 물어봤다. (참고로 나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다.) 기도 후 내가 느낀 것은 감사하게도 신은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성취감을 사라지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성취감은 인간의 본능으로 기본 세팅 되어 있으며, 우리가 이 좋은 성취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내면 한 구석에 그대로 있다. 이것은 정말 고마운 상황이다. 성취감은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잠시 앞에서 꺼낸 레고 이야기를 다시 해 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레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블록을 조립하며 노는 것이 재미있고, 성취감을 느낄지 몰라도 나는 별로 흥미가 없다. 반대로 내 형은 레고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손재주가 아주 좋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이런 레고 같은 블록 조립은 물론이고, 사각 큐브를 조작해서 빨리 맞추는 것도, 라디오 키트 조립 같은 것도 형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쉬운 일이었다.
단순한 형태의 레고 블록 조립조차 흥미가 없던 나에게 형의 손재주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무엇인가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생기면 난 어김없이 형에게 부탁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형은 본능적으로 만드는 것에 성취감이 큰 사람 같다. 그래서 지금 그의 직업도 자동차 회사의 엔지니어이다. (참고로 전에는 셰프였다. 이 역시 손재주가 필요한 직업이다.)
아무튼, 내가 형과 다른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성취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이 달라서 흥미가 없었을 뿐이다. 나는 성취감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성취감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곳에서 결과로 이어질 때 나타난다. 혹시 당신이 성취감이 없다고 걱정하거나, 부족하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언급한 것처럼 이 세상에 성취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당신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그 어떤 것이 없기 때문에 아직 성취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내면에 잠들어 있는 성취감을 깨우면 된다.
<참고 자료>
[1] 서울대학교병원 신체기관정보
[2] 중앙일보 과학칼럼(2009.02.14)/신남식 서울대교수
[3] 차병원 임신정보
*표지 이미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