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님의 남편 Apr 04. 2022

내가 촛불이냐, 꺼지게.

부부가 사랑한다는 것은



아내가 코로나19 백신 1차를 맞은 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백신 부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신을 맞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벼운 부작용을 겪고 수일 이내에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언론 기사를 보면 여전히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식물인간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작용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아내의 경우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중증 부작용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군데 종합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해도 확인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부작용들에 매일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처량해 보인다.


아내는 설거지하고 있는 내 뒤에 다가와 갑자기 와락 껴안았다. 


“여보.”

“어?”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온기는 좋지만,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8개월째 전업주부가 된 마음은 썩 좋지 않았다. 


“꺼져.”


순간, 말을 잘못해 버렸다. 사실 이 말은 아내가 해왔던 살림을 내가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불평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제약 회사의 백신과 넉넉한 검증 기간을 거치지 않은 백신 접종을 강권한 정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의도와 다르게 약간 짜증 섞인 말이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치, 내가 촛불이냐 꺼지게.”

“그러게….”


아내의 말에 설거지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아기 코알라처럼 내 등에 계속 붙어 있었다. 성질이 온순한 코알라는 하루에 보통 20시간을 자고 나머지 시간에 활동을 한다고 하던데, 생각해 보면 백신 부작용으로 아파서 온종일 누워 있는 아내의 모습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집에 정전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암흑천지에 불을 밝히기 위해 양초를 찾았다. 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 ‘자기가 촛불이냐’고 말했던 아내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심지에 불을 붙여 초가 타면서 빛을 내는 촛불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칠흑漆黑 같은 어둠을 뚫고 주위를 밝힌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한 자기희생을 결코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다. 희생을 결단하고 실행함으로 인해 실체적인 밝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목적을 다하면 조용히 사라진다.


부부 사랑을 함부로 정의할 수 없겠지만, 그 사랑에는 촛불 같은 희생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 같다. 상대를 위해서 나를 버리고, 태우고, 빛을 내야 밝음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가 있다. 어쩌면 상대를 자신의 일부라고 여길 수 있어야 그때부터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일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