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지꺼 지우다. 백록담

제주도에서의 이튿날.

by 런앤런초이

상상하고 그려보던 백록담에 드디어 올랐다. 혼자서 우뚝 다시 세워지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장면에 직접 들어왔다는 이 기적 같은 기쁨을, 이 감격스러운 경험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렇게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흐르던 쓰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흐려놓았다. 마치 욕심 앞에 내 본심을 잃어버린 것처럼.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이렇게 가슴 뛰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혼자서 오른 나의 한라산 백록담은 앞으로도 내 인생의 중요한 에피소드로 계속 이야기될 거란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그날 새벽 4시 반에 문자 소리에 기대감으로 선잠을 자던 난 눈을 번쩍 떴다. 깜깜한 새벽 핸드폰 화면 빛에서 보이는 문자 한 통의 내용은 이랬다. “제주도에 강풍주의보로 한라산 삼각봉까지만 입산이 가능합니다.” 뭐? 그럼 백록담은 볼 수도 없다는 것인가? 난 백록담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비행기 타고 혼자서 날아왔는데... 순간 밀려오는 실망감에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얼마나 기다디 던 순간이었는데. 오기 전까지 “한라산 혼자서 등반”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매일 보다시피 했다. 막상 혼자서 백록담을 가겠다고 했지만 내심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걱정은 그냥 걱정일 뿐 내가 가기로 마음먹은 일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나름의 안전장치를 위하여 유튜브를 검색해 보는 정도였으니깐. 화면으로 보는 한라산 백록담은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끝도 없이 나에게 보이는 영상들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백록담까지 오른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더 생생한 그 백록담을 바로 코 앞에서 보지 못하게 생겼으니 힘이 안 빠질 수 없었다. 한라산 국립공원 사이트를 몇 번이고 들락날락거렸다. 보이는 것은 빨간 글씨의 입산통제. 잠시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도 삼각봉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게 어디야? 삼각봉도 한라산에서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니 백록담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삼각봉이라도 보고 오자는 마음이었다. 깜깜한 새벽의 어둠 속에서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 천천히 옮겨가는 느낌이었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경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완만한 등산로 성판악 코스와 오르는 길이 험하지만 경치가 빼어난 관음사 코스. 내가 만약 조금은 쉬운 길인 성판악 코스로 오르고자 했다면 경치가 빼어난 삼각봉 조차 보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오히려 다행을 넘어 역시 잘한 선택이란 생각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오늘 안전문자의 영향인지 생각보다 관음사 주차장은 한산했다. 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와서 그랬을까? 이렇든 저렇든 주차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이것도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흔들렸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니 모든 것이 나에게 운처럼 다가왔다. 동이 트기 전 새벽 산행이기에 헤드렌턴을 체크하고 겨울철 산행이기에 아이젠도 끼고서야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드디어 등산로 입구에서 예약확인증과 신분증을 당당하게 보여주고선 들어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직원분의 인사에 나도 화답했다. 새해 좋은 기운을 듬뿍 받게 될 이 거대한 한라산이 그 순간 내 품에 가득 들어온 느낌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그 어두운 새벽에 혼자서 산을 오르면 무섭지 않겠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무서움은 내 마음으로 비집고 들어오려야 들어올 수 없다고. 오로지 렌턴 빛 하나가 비추는 조금 앞에 놓인 길, 내 발소리, 그리고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 공기에 그토록 고요하고 차분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정갈하게 정리가 되는 이 감동 앞에서 무서움, 두려움이라니. 자연이 마치 엄마품처럼 나를 꼭 품어주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한라산 입산은 우선 신원파악을 입구에서 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자연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니까. 자연 속 생명들보다 악한 마음을 먹은 사람들 때문에 ‘혼자서’ 그것도 ‘여자’라는 신분으로 ‘새벽’, ‘어두움’ 속에 놓여진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걱정과 달리 오르는 내 심정이 어떤지 나만 알 수 있기에 더 미소가 지어졌다. ‘걱정 마세요. 여긴 안전해요.’라고 날 걱정해 준 이들에게 보내는 안심의 미소.

한참을 오르니 저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하나 둘 깨어나는 자연의 빛들이 나를 반긴다. 내가 이 길을 걷고 있구나. 한라산의 곳곳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한 치 앞의 내 발만 보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가는 길이 혼자지만 더 즐거웠다. 자연 속 생명들과 함께 오르는 기분이랄까? 더 높이 오를수록 눈이 덮인 설경의 풍경은 신비로웠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렇게 일부러 보러 오지 않으면 보기 힘든 눈이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어린아이 마냥 신이 났다. 나뭇가지 위로 그 모양새대로 덮여 있는 눈, 그 차가운 겨울에도 초록빛을 선명하게 띄고 있는 식물들.. 이 추운 겨울에도 너희들은 이렇게 잘 버티고 있구나. 모든 겨울을 이겨낸 이 생명들은 따뜻한 계절에 더욱 강하게 자기 생명을 이어가고 있겠지? 그 경이로움에 잠시 곧게 뻗은 나무에 내 손을 포개어 보았다. 잠시지만 내 손과 나무 사이로 온기가 오고 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무에게, 나무는 나에게. 서로가 보내는 시선이 느껴진 것은 내가 나무에게 보내는 마음이 있어서겠지?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 발자취를 지켜보는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오르는 사람들에게 잘 가고 있다고, 잘 오르고 있다고, 힘들어도 오르면 다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혼자서 오르지만 혼자 오르고 있지 않다는 이 느낌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달리기도 좋지만 등산도 좋은걸? 달리기가 쏘아 올린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 삶의 곳곳에. 사람들이 산을 왜 오르는 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자연 속에 들어오니 늘 의도치 않게 나에게 영향을 주는 자극적인 외부자극들로부터 나를 차단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산을 오르고 있는 내 마음이 단순해지고 명료해지는 느낌이었다. 복잡한 세상에서도 늘 나를 잡아줄 그 무언가. 그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임을 이제는 안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도, 이렇게 등산을 오르며 느끼는 것도.

혼자서 묵묵히 오르다 보니 어느덧 삼각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도착했구나. 이렇게도 빨리’ 이내 삼각봉까지 올랐다 내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을 보니 입산통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저 멋진 절경 뒤에 더 광활하고 지금껏 보지 못한 황홀한 설경이 있다고 상상을 하니 더 안달이 났다. 눈앞에 두고 보기만 해야 되는 안타까움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이 장소에 함께 오른 이들도 마음으로 얼마나 간절하게 바랄까? 삼각봉 대피소에서 적혀 있는 “기상악화로 정상탐방을 통제합니다” 이 문구가 야속하기만 했다. 혼자서 올라도 여럿이 올라도 지금 이 순간 간절한 마음은 하나로 통했다. ‘제발 우리 올라가게 해 주세요.’이 간절한 느낌 참 오랜만에 느낀다.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온 것. 무엇이 있었을까? 늘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것들을 곁에 두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는 날들이 많았지? 나이가 들수록 간절함으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도전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나는 지금 내 인생 일대 아주 중요한 도전 앞에 서있고 그 도전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서성이고 있지 않은가? 바람도 잠잠한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느껴지는 게 아니라 바람이 이 정도는 탐방하기에 괜찮지 않냐고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다리면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준비해 간 컵라면을 먹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솓아 오르는 물을 컵라면에 담았다. 그러나 너무 추운 날씨에 컵라면의 면은 시간이 지나도 맛있게 익지 않았다. 과자 반, 라면 반인 컵라면을 호로록호로록 세상 가장 맛있는 라면처럼 단숨에 먹어치웠다. 국물까지 싹싹.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마음으로 통제소 앞에서 서성였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서성였다.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기나 한 듯 갑자기 방송이 나온다! "백록담 탐방이 가능합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그 순간이다.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어. 적당히 만족하지 않기를 잘했어. 환호성을 지르며 힘들게 올라온 것도 잊은 채 새롭게 출발하는 것처럼 더욱 고난도의 길을 올랐다. 상상한 그 이상으로 설경은 위험할 정도로 멋들어졌다. 눈이 가득 쌓인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거의 없는 그 길을 앞에 가는 사람에 기대어 나도 힘차게 올랐다.

깊은 눈밭을 헤치며 오르고 오르고. 오르며 만난 한라산의 진짜 모습에 얼마나 감탄사를 내뱉었는지 모른다. 이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니. 거센 바람에 눈이 그대로 멈춰버린 그 시간을 머물고 있는 상고대가 즐비했다. 살면서 상고대를 처음 본 나는 눈으로 카메라로 담기 바빴다. 푸르디푸른 하늘 빛깔에 새하얀 빛깔의 상고대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니. 어느 글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것에서 곧잘 그러듯 풍경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그러면 붙들고 있던 나 자신은 사라지고 외부의 좋은 것들로만 채워지는 듯했다.’ 사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것에 내 작은 몸뚱이가 녹아들어 가는 느낌. 완전히 스며든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그 느낌 앞에서 내 육체가 잠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한순간 삭제되는 느낌이랄까? 내 몸과 마음이 좋은 것들로만 명징했다.

드디어 내 눈에 백록담을 담았다. 그것도 선명하디 선명한 그 백록담을. 황홀한 절경에 눈물이 나려 했다. 칼바람 속에서도 추운 줄 몰랐다. 오르는 내도록 새로이 보여주는 자연의 선물 속에 가장 큰 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내 두 발로 이렇게 우뚝 섰어. 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감탄과 환호성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 순간 올해의 행운을 가득 저장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백록담을 본 것보다 여기까지 내가 오른 이 길 위의 종착점이 백록담이란 생각에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에겐 백록담도 중요했지만 오르며 견뎌낸 나의 시간이 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내려가는 길은 마음이 가벼웠다. 물론 관음사 보다는 완만하고 쉬운 성판악 코스로 내려와서기도 하지만 말이다. 뛰어 내려오다시피 한 그 길도 누군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얼굴들이 힘겨워 보였다. 누군가는 물었다. 얼마나 더 올라야 하나요? 인생에서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은 두렵고 막막해 보인다. 누구에게라도 어느 정도 하면 되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물어본다 한들 어디가 끝인지알 수 없다. 그러나 오르기로 한 이상 오르면 끝이 있다는 것을, 내려올 때는 지금 마음보다는 한결 가벼울 거라는 마음은 겪어 본 자만이 안다. 누가 먼저 오르고 내려오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금희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바위에 올라 파도의 세기를 가늠하며 어느 타이밍에 뛰어들지 고민하는 성체들도 보였다. 어려울 것이다, 바다로 뛰어드는 일은.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두렵고 주저되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 되고 만다. 이 문장에 오래 머무르는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매일 하는 모든 것들에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일이다. 그러나 내가 한 발 무언가라도 발을 떼면 그다음 발자국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내 발자국을 남기며 가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가지 않은 그 길 위에 나의 삶이란 길이 생긴다. 그 오솔길을 따라 누군가는 편히 지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아무도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내가 유일무이하게 남겨 놓은 길이어도. 그러니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여 오르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저마다 다양한 속도와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등산을 마친 나는 오후의 남은 시간을 선물 받는 느낌이었다. 몸 상태도 생각했던 것과 달리 가뿐했다. 뜨끈한 제주도 전통음식 몸국 한 그릇이면 더 기가 막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에 내려오니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마냥 택시 한 대가 서있었다. 택시에 오르니 기사님이 “빨리 다녀오셨네요? 오늘 날씨 운이 있어서 더 좋으셨겠어요? ” 기사님의 말씀에 나에게 있었던 오늘 일이 더 값지게 다가왔다. “네, 오늘 새벽에 입상 통제 되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백록담을 보고 와서 너무 좋습니다.” 기사님은 올해 행운을 제대로 받으셨다고 하신다. 제주 사람들도 맑은 날의 백록담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기사님의 말씀에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어깨가 더 으쓱 올라갔다. 그러시면서 “고집을 피우셨네요.” 그러신다. 여기서 고집이란 어린아이들의 앞 뒤 분간 없이 하는 행동이 아닌 자기 소신대로 밀어붙인 것을 의미하신다면서 이럴 때 제주말로 ”막 지꺼 지우다 “라고 표현한다고도 알려주신다. 내 고집으로 버텨서 백록담에 오른 것이라고. 그렇다. 인생에서 고집이 때론 필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그런 고집 말이다. 고집을 부린 자만이 그 뒤의 결말을 알 수 있는 인생이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다양한 부분에서 내가 고집이란 것을 부리며 살게 될까? 잘 한 아이 궁둥이 토닥거리듯이 마음속으로 내가 내 엉덩이를 토닥여 준다. 다시 또 언제 만날까? 택시 창문 밖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백롬담에게 인사를 하며 또 다음 나의 도전을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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