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에서
요즘 나는 내가 선택한 고통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달리기도 그렇고, 요즘은 등산도 매력 있게 느껴진다.
달릴 거리와 속도, 시간을 내가 정하고, 어떤 산을 오를지, 어디까지 견딜지, 언제 내려올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 이 고통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피해야 할 것도 아니다. 내가 고른 조건 속에서 내가 통과해 보는 시간이다.
어제는 친구와 가지산에 올랐다.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했다. 돌산이라 발 딛는 자리마다 흔들렸고, 경사는 가팔랐고, 바람은 칼처럼 매서웠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몸은 점점 말을 아꼈고, 생각도 단순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힘든 오르막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야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들이 조용히, 그러나 압도적으로 마음을 채웠다.
정상에 올라서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 오르는 중간중간, 고통을 통과하는 순간마다 이미 보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산에 오르니 내가 살고 있는 터가 아주 작게 내려다보였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도 나는 하나의 점일 텐데,
그 점이 이렇게 숨을 몰아쉬며 이 높이를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애틋하게 느껴졌다.
나는 커지기보다는 오히려 작아지고 있었고,
그 작아짐 속에서 마음은 묘하게 안정되었다.
오르는 시간이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손목 위 시계는 어느덧 세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현실의 시계는 늘 빠르게 달리는데,
자연 속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넉넉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분과 초가 아니라 호흡과 걸음으로 세는 시간.
그 속도에 나를 맞추자 마음이 서서히 풀어졌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반복해서 선택하는 걸까.
아마도 이 고통은 나를 소모시키는 고통이 아니라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끝이 있고, 강도를 알 수 있고, 통과하면 분명히 달라진 내가 남는 고통. 힘든 몸을 이끌고 내려오며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푸근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세상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세상보다 커지지 않아서 좋았다.
점으로 돌아온 자리에서,
나는 다시 내 삶으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