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멈춘 초침이 흘러간다
“하온! 하온!!”
항상 그랬다.
햇살처럼 들이치는 목소리.
그녀는 우울이라는 감정과는 한참 먼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오늘 뭔가 이상한데요?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아…”
그냥 웃어넘기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안 어딘가를 건드리고 있었으니까.
“어, 무시한다! 너무해!”
“아아, 선월.”
“아니, 스승님이라고 불러야죠? 하온, 건방지네요 정말.”
“...네, 네. 스승님.”
하온은 대충 넘기려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가슴 언저리에 맴도는 묵직한 감정이 말을 붙잡았다.
“그래서, 무슨 문제인지 들어볼까요?”
텅 빈 카페 거리.
우릴 제외한 모든 사운드가 정지한 듯했다.
하온은 괜히 머그컵을 만지작거렸다.
“문제 없습니다. 정말.”
“당신을 본 지 7년. 횟수로 치면 몇 번쯤 될까요?”
입술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은 늘 정확하다.
그리고 너무 친숙하다.
이 장면도, 이 대화도.
“거짓말을 너무 못 해요.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속이려 하지 말고, 진심을 줄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남기라고.”
하온은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진심'이란 단어가, 아직도 그에겐 무겁다.
“봐요, 또 무슨 일 있죠? 털어놔요.
말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니까요?”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사람.
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요.”
말을 뱉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조였다.
이 감정이 아직도 자신을 쥐고 있다니.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왔다.
“음... 복잡하네요. 어떤 관계죠?”
하온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하지만 그녀는 늘 답을 안다.
그 자신도 모르는 마음까지도.
“알겠다!
당신은 사랑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잖아요.
부정하고 또 부정하다가… 결국 꿈에 그 사람이 나타나는 거죠?”
“아닙니다. 진짜.”
하온은 거짓말이 매우 서툴다.
자꾸 코끝이 시큰거리는지, 코를 눌러 본다.
“봐요, 진짜잖아요.
당신은 거짓말할 때 항상 코를 만져요. 피노키오 코라니까요.”
"...누구냐고요? 그 사람?”
눈 끝이 뜨겁다.
이건 분명히, 미련이다.
떨치지 못한 마음이 아직 머물고 있는 증거.
“와, 이거 그거다.”
“그거요?”
“미련.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눈빛.”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냥 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언제나 그가 숨긴 감정을 정확히 찔렀다.
“스승님이 그렇게 가르쳐줬나요?
미련과 후회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보라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바퀴 돈다.
빙글빙글.
하온의 생각도, 감정도 그 속을 따라 회전한다.
“꿈, 희망. 그런 형태도 없는 것들에 기대지 말고, 행동하라고 했잖아요!”
익숙한 말.
하지만 오늘따라 더 아프게 와닿는다.
“네네, 선월. 한 번뿐인 인생, 불태우다 무너지는 것도 예술이라고 하셨죠.”
“스승님이라고요!!!”
“아아, 네. 스승님...”
“...근데 왜 자꾸 제 눈을 피하죠?”
...들켰다.
“뭐라고요?”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말없이 하온을 바라본다.
“아… 그 문제가, 저군요?”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그의 마음이 들켜버린다.
“...우리 이 대화, 몇 번째였죠?”
그녀가 묻는다.
하온은 당황한다.
이건... 처음 보는 패턴이다.
“그건...”
“잠깐, 말하지 말아봐요.”
“하온...이거 환각, 환청 같은 거죠? 그 원인이… 나고.”
정적.
눈앞의 그녀가 실제인지, 환상인지.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이 모든 대화가,
하온이 만든 기억이라면.
멈췄던 초침이 드디어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