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얼음 위에 띄운다면
“혼자 오셨어요?”
“네.... 조금, 부족한 날이라서요.”
그 말에 아현은 짧게 웃었다.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아니, 아예 알아들을 듯, 잔을 꺼내며 되물었다.
“얼마나 부족하세요?”
석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천천히 바를 둘러봤다.
조용한 1자형 바, 낯선 술 이름들,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아현.
“한 잔이면 괜찮아질 것 같은 하루요.”
“그럼, 한 잔 반쯤 진심을 섞어드릴게요.”
그녀는 얼음을 세 개, 소리를 내며 잔에 떨어뜨렸다.
오늘도, 그렇게 또 다른 대화가 시작되었다.
"요즘 안 오시길래,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어요"
"그냥, 술생각이 안 나면, 잘 지내는 거죠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오는 곳인걸요 저에겐"
석현의 비참함이 익숙한 아현은
투명한 얼음을 잔에 둔 채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나는 그럼 손님의 비참한 모습만 봐야 하는 거야? 좀 슬픈데?"
아현은 투명한 얼음을 천천히 굴렸다.
잔 안에서 얼음은 딸깍, 짧게 울리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알아요?”
석현이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잔을 들어 보였다.
“이 얼음, 음료를 바로 부으면 깨져요.
진짜 예쁘게 깎아도, 안 기다리면 망가지거든요.”
석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얼음 좀 금 가는 게... 뭐, 취하는 데 방해되는 것도 아니고요.”
아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받아쳤다.
“금 간 얼음이 예쁜 칵테일을 망치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잠깐 기다려요. 술 붓기 전에
얼음이랑 잔의 온도를 맞춰주는 시간.”
그녀의 손끝이 잔을 빙글 돌렸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고 천천히.
달그락 얼음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
이제 보니, 참 매력적인 소리다.
잠깐, 조금 기다리는 시간.
“진심도 그래요.
말하기 전에, 이렇게 잠깐은 기다려야 해요.
감정도 그렇잖아요.
조급하면 다 금 가고,
아무리 소중해도 상처투성이면...
나중에 추억하기조차 미안해지니까.”
석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진심을... 말하기 전에 조금 기다리라...
서로의 온도가 조금 맞춰지게....”
말을 되뇌며 잔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엔,
지나온 날들이 어렴풋하게 비쳐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현은 턱을 괴고 그의 고뇌를 조용히 즐겼다.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머, 좀... 다시 곱씹을 정도로, 내 멘트가 꽤 매력적이었던 거죠?”
석현은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한껏 부풀린 가슴을 천천히 내쉬며 웃었다.
“.... 이제, 더 안 취하고 싶네요. 논알코올 음료 하나만 추천해 주세요.”
아현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술 파는 데서 논알코올을 찾다니,
우린 도대체 뭘 팔아서 장사하나, 정말.”
석현은 피식 웃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이 터졌다.
“푸핫, 그러네요.
그럼.... 늘 마시던 걸로 한 잔.
조금 느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