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상처 입었다고 해서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는 사람이 어른인걸
“사진, 좋아하세요?”
하진이 물었다. 시윤이 얼굴을 들었다.
햇살이 비치는 보호소 마당. 털이 날리는 강아지들 사이에서, 시윤은 말없이 강아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 순간이 예뻐서 하진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심코 튀어나온 말. ‘찍고 싶어요’를 돌려 말한 질문이었다.
시윤이 짧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연다.
“아니요. 별로요.” “... 하진 님은 좋아하시나 보군요. 찍히는 걸.”
목소리는 담담했고, 눈빛은 조용했다. 그 말이 너무 무덤덤해서, 하진은 괜히 더 물어보는 게 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놀라움은 다른 데 있었다.
"... 제 이름, 기억하고 계셨군요?”
하진은 의외라는 듯 반달 같은 눈을 만든다. “저번에 이름 잘 못 외운다고 하셨잖아요.”
그의 기억 속에 자신이 남았다는 게, 조금 기뻤다.
“그야, 이번이 세 번째잖아요. 같은 조로 봉사한 지.”
하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웃는다.
“그래도, 이름을 불러준 건 이번이 처음인걸요?”
시윤은 말없이 일어나 허리를 편다. 조용히, 천천히.
“... 그랬나요?” “강아지들한테 집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요.”
하진도 그를 따라 일어선다. 바람에 털이 흩날리고, 그 틈으로 그의 실루엣이 흔들린다.
“시윤 님은...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그 말에 시윤은 시선을 살짝 내린다. 그리고 조용히, 남다른 대답을 꺼낸다.
“... 아뇨?”
단호하지도 않고, 장난도 아니었다. 마치 더 이상 스스로를 누구에게도 소개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하진은 그 말의 진심이 어디쯤 있는 건지 잠깐 헷갈린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궁금한 게 많은, 그런 여자였으니까.
“근데... 강아지들이 시윤 님을 제일 좋아하잖아요.”
말끝에 은근한 미소가 실린다. 도발도, 확인도 아닌 그저 눈앞의 사실을 말하듯 부드럽게.
유독 강하게 짖던 강아지도, 시윤의 손에 빗겨질 땐 조용히 눈을 감곤 했다.
하진은 그 장면을 여러 번 봤다.
“버려진 아픔을 아는 거죠.”
그 말에 시윤의 손이 잠깐 멈춘다. 작은 멈춤이었다. 하지만 하진은 알아챘다.
시윤은 개집 문을 닫으며 등을 돌린다. 닫히는 소리보다, 그의 침묵이 먼저 들렸다.
“... 그런 건, 기억하지 않는 게 나아요.”
하진이 무슨 말인지 묻으려다 말고, 입을 다문다.
그가 혼잣말처럼 덧붙인다.
“기억해도...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 순간, 바람이 조금 더 불었다. 그들의 사이에도 잠깐의 정적이 지나간다.
“사람은... 본인이 갖지 못하는 것에 끌린다고 하잖아요.”
하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그건 위로였다. 아주 작고, 따뜻한 손길 같은 말.
하지만 시윤의 표정이 굳는다. 입꼬리가 내려가고, 눈빛이 서늘하게 식는다.
“... 그런 뻔한 말로, 이 유기견들이랑 저를 위로하지 마세요.”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말끝은 뾰족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사료통을 들어 올려, 거칠게 그릇에 사료를 붓기 시작한다.
철제 그릇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힌다. 툭— 어딘가 감정이 떨어져 나간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에, 잠들 듯 조용하던 래브라도 레트리버가 놀라 짖기 시작한다.
“컹! 컹! 컹!”
“꺅!”
하진이 깜짝 놀라 본능처럼 뒤로 물러선다. 벽에 부딪히는 소리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마음 쪽이었다.
달려드는 리트리버. 그 덩치가 거칠게 움직이며 하진에게 향한다. 하진은 숨을 들이켜려던 찰나—
시윤이 움직인다.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의 다리를 틀어 개의 움직임을 막는다. 무릎을 낮추고, 손을 내밀며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한다.
“진정해. 괜찮아.”
개의 짖음이 멎는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리트리버는 이내 시윤의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짧은 정적이 흐른다. 하진은 벽에 기대어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그 틈을 지나, 잔소리처럼 들리는 시윤의 말이 떨어진다.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요.”
“저...” 하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늘 혼나던 사람이, 작게 용기를 내듯 말을 꺼낸다.
시윤은 한숨을 크게 내쉰다. 그러곤 뜻밖의 말을 꺼낸다.
“이 아이들도… 상처 주려고 그런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의 말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하진의 숨을 멈추게 한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 네?”
하진이 놀란 듯 되묻는다. 무슨 뜻인지, 금세 와닿지 않아서.
시윤은 한 번 눈을 감는다. 그 눈엔 오래된 상처 하나쯤 담긴 듯했다.
“사진이 찍힌 그 순간을.... 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아서 그래요.”
그가 말하는 ‘순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진은 묻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으니까.
그 순간에 누가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
그리고, 그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얼마나 잔인했을지를.
“그럼.... 그 상황을 기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는 거죠.”
하진이 말을 꺼낸다. 시윤이 고개를 돌린다.
“... 아픈 기억을, 기억하자고요?”
“그렇죠. 다시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최선을 다할 거예요.”
하진의 눈빛이 단단해진다.
“그래서 저도요. 유기견 봉사하면서... 절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 하진은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든다.
“한 장만, 이 순간만요. 그게 당신에게 오래 남았으면 해서요.”
진정된 레트리버가 꼬리를 흔들며 둘 사이를 빙글빙글 돈다.
시윤이 피식 웃는다.
“... 참, 후회할 짓을 망설임 없이 하네요.”
하진이 웃으며 답한다.
“지금 이 말도... 나중엔 후회하겠죠. 근데 지금은, 진심이에요.”
그 말에, 시윤은 리트리버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작게 입을 맞춘다.
찰칵.
정말 열악한 시멘트 바닥. 오줌에 부식된 철장. 그리고 냄새나는 유기견.
그런데—
하진은 조용히 화면을 바라본다. 그 웃음을, 꼭 다시 보고 싶어질 때가 오겠지.
그러니까 오늘은... 이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