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가는 방법을 알게 된 날
바다는 잔잔했고,
바람은 더위를 못 이긴 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둘 사이엔 맥주 두 캔과,
말 못 할 만큼의 거리.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운명을 믿나요?”
그는 시선을 바다에 둔 채,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럼요. 전 운명론자입니다.”
“진짜요? 그런 타입처럼 안 보여요.”
“그럼 전… 어떤 타입처럼 보여요?”
그녀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것보다, 운명을 믿는다면 사주나 타로 같은 것도 자주 보시나 봐요.”
“그럼요. 배우기도 했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어머, 저도 봐주실 수 있나요?”
“같이 보러 갈 수는 있죠.”
“직접 봐주시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제 운명을 제가 볼 순 없으니까요.”
그의 말은 웃고 있었지만,
말끝에 조금 지친 농담처럼 여운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그걸 눈치챘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
파도 소리만 흐르고, 맥주 거품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럼, 보러 갈까요? 우리?”
“벌써 우리인 거예요?”
그녀는 맥주 캔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궁금해졌어요. 운명론자가 타로를 대하는 태도가요.”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으음… 여기에 타로 전문점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그럼, 그거부터 찾아야죠.
운명처럼, 딱 나타나는 곳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가볼까요. 우리.”
그녀가 걸음을 떼려는 찰나,
고개를 돌려 물었다.
“잠깐. 가서… 뭘 보실 건데요?”
“궁합…? 뻔하죠?”
“우리, 커플로 가는 걸까요?”
그는 눈을 피하며 작게 웃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그녀는 가볍게 웃었지만,
말은 꽤 진지했다.
“그럼요.
관계에 대해 본다면,
시작점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뭐가 좋을까요, 우리… 삼귀기?”
그는 말없이 맥주 캔을 찌그러뜨렸다.
그녀는 그를 바라봤고,
그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으음, 왜 그렇게 웃어요. 정말.”
“굳이 보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무슨 뜻이에요?”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말을 아끼듯, 조심스럽게.
“예전에… 누군가랑 운명을 맞춰보려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땐, 전부 맞는다고 나왔는데도 결국 잘 안 됐어요.”
그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요즘은요,
운명이라는 게 꼭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게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인위적이지만, 물 흐르듯 지나가는 거.
노력하지 않아도 편안한 거.”
“그래서요?”
“지금 우리처럼요.
굳이 뭘 확인하지 않아도,
이대로도 충분하면… 굳이 볼 필요 없잖아요.
시간 낭비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손등을 천천히 감쌌다.
그녀의 눈썹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그러곤 말없이 손을 허락한다.
“어머, 이제야 용기를 내는 거예요?”
그는 일어나 바지를 털며 말했다.
“가시죠.
조금 걸어요, 그냥… 어디든.”
그녀도 함께 일어섰다.
“좋아요.
뭐, 큰 용기 낸 것치곤…
별일 없지만요.”
하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그녀가 땅에 남겨둔 그림자를
한 번 더 바라본 뒤, 미소 지은 걸.
파도 소리에 묻힌 웃음소리.
바다에 비친 달이,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환하게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