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감정도 들지 않던 키스

끝이 보여서 시작할 수 없어요

by 보월

진아는 아주 세련된 사람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아무렇게나 올린 셀카 하나에도,

타투가 너무 잘 어울린다,
헤어스타일은 어디서 했냐,
옷 브랜드가 뭐냐
DM과 댓글이 매일 쏟아졌다.

사람들은 진아에게 관심을 가졌고,
진아는 대체로 금방 질렸다.

“예쁘면 예쁠수록, 피곤해지는 것도 빨라요.”
그게 그녀의 연애 요약이었다.

직업도 그랬다.
하고 싶으면 시작했고, 지루해지면 정리했다.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어디에 엮인다는 느낌이, 진아에겐 늘 피로였다.

그래도 그녀는 지루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지루해지는 속도가 남들보다 빨랐을 뿐.

열정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그래서 뭐든 금세 익혔고, 잘하기도 했다.

덕분에 눈에 띄었고, 질투도 많이 받았다.
화려한 외모는 늘 시선을 끌기 마련이니까.

돈은 벌 만큼 벌었다.
지금 하는 일도, 그만두면 그만이었다.
뭘 새로 해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사람.

진아 주변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컨트롤할 수 없는, 개성 강한 사람들이었다.

진아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늘 중심에 서 있고,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
그녀 곁엔 대개 비슷하거나 더 센 사람만 남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리지 않는 척,
결국엔 지겨워지고 마는 관계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이 하나둘 정착해 가기 시작했다.

진아도, 처음으로 결혼을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갖고 싶어 졌다’는 말이 더 가까웠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으면
정말로 인생의 2막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일도, 인간관계도, 연애도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삶에
결혼이라는 건 마치 ‘성공’처럼 반짝거렸다.

냉정한 줄 알았는데,

나도 흔들렸다.

그날 저녁, 진아는 퇴근 중이었다.

하이힐 굽이 바닥에 또각 소리를 냈고,
손에는 아메리카노 대신 라떼가 들려 있었다.

부드러운 걸 마시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었는데,
결국 정답은 아메리카노였다.

또 누군가 앉아 있겠지,
나를 무난하다고 말할 사람.

그런 예감에 벌써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던 찰나—
휙.

누군가의 어깨가 그녀와 부딪혔다.
라떼가 튕겨져 나갔고,
트렌치코트엔 하필, 그날의 얼룩이 번졌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잘 못 보고...”

남자는 허둥대며 손수건을 꺼냈다.

진아는 그 손을 막으며 말했다.
“손대지 마세요. 라떼라 지워지지도 않아요.”

그냥 귀찮았다.
손수건을 꺼내 드는 걸 보며,

진부하네. 그 말밖에 안 떠올랐다.

그날 저녁, 소개팅 자리.
진아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얼룩이 남은 옷 위에 코트를 걸쳤다.

상대는 이미 와 있었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낮에 커피를 쏟은 그 남자였다.

“... 저, 혹시 낮에...?”

진아는 웃었다.
“진짜… 드라마 같네요.”

순간, 마음속에 이상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혹시 이게, 내 이야기의 시작은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은 날이었다.


말은 딱 적당했고,
대화는 편안했다.
그래서 문제였다.

심장은 고요했고,

자꾸만 시선이 흘렀다.

아무 느낌도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이 남자, 어디 하나 나쁜 데가 없는데

왜 이렇게 공허한 걸까.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가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꺼냈다.

그걸 보는 순간, 진아는 알았다.
이 남자는, 앞으로도
이렇게만 조심스러울 거라는 걸.

그래서

진아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잠깐만요.”

그녀는 살짝 몸을 돌렸다.
둘 사이의 거리,
그 짧은 간극만큼 마음이 흔들렸다.

아주 짧게, 아주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건 감정보다,
질문에 가까운 키스였다.

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심지어 그 입술은 조금 차가웠다.

진아는 눈을 뜨고 말했다.

“... 아무것도 아니네요.”

감정보다 더 공허한 말.
그게 진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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