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어요, 제가 당신 몫까지

조금 걸을까요?

by 보월

“소혜 님, 소혜 님!”

“네?”

소혜는 갑자기 튀어나온 목소리에 놀라,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거의 짧은 비명 같은 소리였다.

“소혜 님은, 소혜 님이 보고 싶었어요?”

“... 예?” “소혜 님이 소혜 님을 보고 싶었냐고요!”

정말 미친 남자다. 너무 영화 같아서, 이름도 영화인가 싶었다.

문맥도 상황도 전혀 맞지 않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다.

“아... 아니요?"

“휴, 다행이다.”

“어... 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다.

“다행이죠! 제가 소혜 님 몫까지 보고 싶어 했으니까요!”

영화는 팔을 골반 쪽에 붙인 채 당당하게 어깨를 편다.

뭔가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그럼 억울하지 않지, 두 사람 몫을 해낸 나니까요!”

“어... 아...”

도무지 반응할 수가 없다. 이 사람은, 정말... 조금 길어지는 침묵 속에서 소혜는 당황함을 애써 감춘다.

“잠깐, 좀 무례해도 될까요?”

“아뇨, 아뇨 아뇨 아뇨.”

또 무슨 사고를 치려는 거지? 당황한 소혜는 같은 말을 반복해 보지만, 영화를 막을 순 없다.

“허락을 구한 건 아니었어요.”

영화의 손이 훅, 소혜의 머리로 들어온다.

“가만히요.”

움찔하며 눈을 감아버린 순간,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귀 뒤로 넘겨진다.

영화는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헤헤, 괜찮네요. 아까보다 더, 내일보다 덜.”

“무슨 짓이에요!”

“예쁜데, 그걸 숨기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라?”

침묵이 길어진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소혜를 너무 가볍게 건너뛰는 말이 영화에게서 나온다

“아니면, 저랑 밥 먹을래요? 당신과 다음이 궁금해요.”

“싫어요, 싫어.”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다. 소혜는 이 당황스러움을 최대한 표출해 보지만...

“헉! 다행이다.”

잘못 들은 것 같아, 소혜는 다시 묻는다.

“네...?”

“다행이라고요. 거절당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요!”

“무슨 뜻이에요?”

소혜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말 그대로요! 거절당하지 않으면 생각을 못 하니까요.”

“네...?"

“내일, 다른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좋잖아요?”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난다. 영화는 망설임 없이 문 쪽으로 걸어간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왜... 내가 아쉬운 걸까. “다음이 없으면요?”

왜... 잡고 싶어지는 걸까.

“그럼, 보고 싶을 때 봬요!”

“보고 싶지 않으면요!”

그가 너무 빨리 나가버린다. 다급한 마음에 소혜는 목소리를 높여버린다. 본인도 놀랄 만큼 크게.

“그럼, 이게 우리 마지막이겠죠?”

영화는 턱을 만지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 사람은 고민 없는 사람이다.

“혹시, 저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영화씨.”

“글쎄요? 거의 몰라요. 이름이랑 얼굴? 그 정도?”

진짜 고민 하나 하지 않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 무례한 걸까, 당당한 걸까.

“근데 왜 이렇게 하시는 건데요?” “그냥... 하고 싶어서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소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외친다.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해요!!”

영화는 놀라듯 어깨를 움츠린다. 이내, 태연하게 대답한다. “잘 모르니까요?”

“네?”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기대했지만, 역시 영화다.

“원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하...”

소혜의 한숨이 짧게, 그리고 깊게 나온다.

“그럼 소혜 님은 잘 아시니까, 알려주시면 되겠네요?”

“네?”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소혜 님이 알고 있는 걸로 알려주세요.”

정말, 이 말도 안 되는 전개가 현실에서 일어날 줄이야.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소혜는 자기가 뭐 때문에 화났는지도 잘 모르지만, 이 사람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에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른 채.

잠깐의 정적. 침묵을 깨는 건 영화였다. “그야... 나도, 내가 틀렸다는 걸 알고 싶으니까요.”

길어지는 침묵. 결국 참지 못하는 쪽이 말하게 되어 있다. “하... 그래요. 알겠어요.”

‘그런데, 왜 화났더라?’ 소혜는 자신도 헷갈린다.

“헤헤, 표정 보니까 왜 화났는지도 모르는 표정인데요?” “무... 무슨!”

소혜는 당황에 말을 더듬는다. “다행이다.”

영화는 부드럽게 말한다. 그 얼굴엔 안도감이 퍼져 있다.

“뭐가 다행이에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은 깊어져 간다.

“당신의 화가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생긴 거라서요. 그게 다행이에요.”

반박할 수 없게 파고드는 말. 소혜는 이를 악물고 입을 연다.

“생각나서 화내기 금지. 이 정도로 기억나지 않으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영화는 그녀의 미간을 바라보며 말한다.

“봐요, 지금도 함부로 말하잖아요!”

“함부로 해도 될까요?”

그리고, 정말 영화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무슨...”

영화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일어난다.

“조금 걸어요. 걷다 보면 생각나겠죠, 뭐.”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우리는 서로를 가장 아는 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