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어요, 이 거리가

잡기 위해서가 아닌, 정리하기 위한 고백

by 보월

지훈은 항상 걷던 이 거리가, 요즘 따라 참 낯설다.

상가가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닌데, 뭐가 달라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거리에 프랜차이즈가 거의 없어서 그렇다고, 나연이 그렇게 말했던 게 생각난다.

“그래서 좋아. 체인점 없는 거리.”

나연은 그 말과 함께 웃었다. 그 웃음에 잠깐, 지훈의 시간은 멈췄으니까. 그 웃음은 이 거리만큼이나 오래 남았다.

그러니까, 지훈은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생각난다. 아주 많이. 아주 자주.


그날도 그랬다. 뭐 특별할 것 없이 그냥 걷고 있었는데, 저기, 저렇게 걷는 게 딱 나연이었다.


보스턴백을 어깨에 메고, 조금 빠른 걸음, 핸드폰을 손에 푹 채로— 익숙해서 아프도록 낯익은 모습.


“엇.” “아.”


짧은 단말마. 모른척하기엔 눈이 너무 오래 마주쳤다.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거리의 소음은 멈추고, 둘 사이엔 고요만이 흐른다.

침묵을 버티지 못하는 쪽이 먼저 말을 걸겠지.

그리고 더 좋아하는 쪽이, 이 싸움에서 항상 진다. 이길 수가 없다.

아니, 애초에 이기려고 좋아했던 게 아니니까.

“퇴근이에요?”

“응, 집에 가는 길.”

“나... 커피 한 잔 하려던 참이었는데, 혹시 같이 가줄래요?”

“커피 한잔 정도는...?”

나연이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으며, 짧게 웃었다. 지금도 여전히, 예전처럼. 익숙한 웃음이었다.



잠시 멈춘 발걸음, 우리는 커피숍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지훈이 용기를 꺼냈다.

“저기... 우리,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갈래요?”

나연이 눈을 찌푸린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다가 물어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거기가... 어디더라?”

막걸리... 집인데...”

나연은 눈을 깜빡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지훈 씨, 제가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술은 좀 버겁네요.”

지훈은 웃었다. 거절이 익숙한 듯 아주 작게, 아주 조용히. 스스로가 밉지 않게.

“그렇겠죠...? 미안해요. 너무 제 생각만 했네요.”

나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담긴 건 배려도, 미안함도 아니었다. 그저 ‘정중한 종결’의 예고 같은 것.

둘은 아무 말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커피숍은 어느새 뒤편으로 멀어지고, 그녀의 목적지인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지훈은 이 거리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다, 다시 용기를 낸다.

“... 여기, 우리 처음 만난 곳인데. 기억나요?”

“... 아, 그랬었나?”

나연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그 웃음엔 미안함도, 애정도,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냥, 예의였다.

기억하지 못한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

“... 보고 싶었어요.”

아무리 꾹 눌러도 꺼낼 수 없던 말이, 왜 이제야 이렇게 불쑥 나올까. 참, 미련하게도.

“... 그런 말, 실례 아니에요?”

나연이 웃으며 말했다.

지훈은 고개를 떨궜다. 말할까 말까, 망설였던 그 문장.

애써 정리하려 했지만, 끝내 꺼내고 만 한마디.

“그러니까... 더 이상하지 않게 말하려고, 많이 생각했어요. 근데 결국, 그냥... 그게 다였어요. 보고 싶었다고요.”

나연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햇살이 기울고, 바람이 불었다. 그저 그런 오후의 거리.

말 대신, 시간이 흘렀다. 이제 드디어 지훈의 거리가,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그녀가 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지훈은 한 발 뒤에서 따라섰다.

“... 나연 님.”

나연이 고개를 돌린다.

“잠깐이지만... 당신이 제 꿈이었습니다.”

나연은 아주 작게 웃었다.

“지훈 씨는 참, 순수하네요. 미워할 수 없게.”



버스가 도착하고, 나연은 버스에 망설임 없이 승차한다.

손을 흔들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지훈은 그대로 서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낯설어진, 이 거리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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