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록되는게 싫었다

그리고 많은 기억을 잃었으니 잃지 않으려고한다

by 보월

사진을 찍는 게 싫었다.
일기를 적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싫었다.

무언가를 남긴다는 게
이상하게 부담스러웠다.
기억이 붙잡히는 게 싫었고,
그 순간을 다시 보게 될까 봐
더 싫었다.

과거는 그냥 지나가면 되지,
왜 굳이 글이나 사진으로

그걸 또 불러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벌써 서른을 넘었다.

내 20대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사진도 없고,

일기도 없고,

함께였던 얼굴들마저 흐릿하다.

문득, 겁이 났다.
정말 살아온 걸까. 아니면...
살기 위해, 기억을 버리며
그저 버텨온 걸까.

뇌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선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살기 위해
기억을 지운 걸까?


꿈이... 뭐였지.
내가 뭘 좋아했더라.
누굴 좋아했었지…?

이름도, 얼굴도, 감정도
다 흐릿하다. 아니, 잃어버렸다.

하나씩 떠올려보려 해도
공백만 커진다.

그리고 결국
아, 난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 돼버렸구나.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내가 싫어할 수 있는 것들도, 셋넷.

그리고...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들로

천천히, 가득 채워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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